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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나는, 지적인 허영심이 많은 편이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마냥 쉽게 읽히는 책은 은연중에 무시하게 되는 단순함, 멋진 문장을 보면 외워뒀다가 적시에 멋지게 풀어먹고 싶어하는 경박함, 그런 정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친절을 베푸는 건 남이 자기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28p 중) 대부분 정확히 기억을 못해 신빙성이 떨어지는데다가, 사실 일상 생활 중에는 이런 문장을 적용할만한 대화가 거의 없다. 그리고 어쩌다 기회를 잡아 풀어먹었다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좌중이 썰렁해 지거나 잘난 척 한다고 왕따를 당할 확률이 높지만, 멋진 문장에 대한 나의 허영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런 성향을 가진 나에게 <살인자의 건강법>은 거대한 보물 창고 같았다. 타슈, 이 독설가가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해 내리는 정의와 해석은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멋진 문구를 만나면 페이지를 접어 놓는 버릇이 최근에 생겼는데(사실은 줄을 긋고 메모하는 버릇을 들이려 했지만....대부분의 독서가 뒹굴거리며 진행되는지라, 임시방편으로 접어 놓다 보니..^^;) 책을 편지 얼마 안 되어 연속 다섯 페이지 가량을 접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실소하며 그냥 포기했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소설은 구성하거나 쓰는 게 아니라고, 인물과 사건을 탄탄하게 잡아 놓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마련이라고 했다. 아멜리 노통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타슈와 니나. 이 확실한 성깔(?)을 가진 두 인물은 작가의 분신들인 듯 하다. 주인공을 공들여 만들고 나면, 책은 자기들 알아서 굴러간다. 작가가 일인 이역의 인형극이라도 펼치는 듯, 생생하고 긴박하게.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문득 타슈가 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스포일이 될까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좀 시시한 결론이다. 하지만, 결말의 반전이 책의 전부는 아닐 터. 책의 초반부, 중반부에서 얻은 즐거움은 시들한 결말을 감싸줄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아멜리 노통,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처녀작이라니....슬슬 존경스러워 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