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말하기는 적극적인 활동이지만 읽기, 듣기는 완전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쓰는 이나 말하는 이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읽는 이나 듣는 이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대편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내져오는 정보를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데에 잘못이 있다.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유산이 굴러들어온다거나 판결을 언도받는다거나 하는 것과는 이치가 다르다. 읽는 이나 듣는 이는 오히려 야구의 포수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공을 받아낸다는 것도 던지거나 치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엿한 하나의 행위이다. 공에다 움직임을 주는 투수나 타자는 '보내는 이'이며 그 움직임을 받아내는 포수나 야수는 '받는 이'이다. 어느 쪽이나 적극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만일, 굳이 수동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이다. 공은 자기 이외의 누군가에 의해서 던져지고 받아지며 맞는다. 자기가 움직일 수는 없다. 던지는 것, 받아내는 것은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마찬가지로 쓰는 것, 읽는 것도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 경우의 책이나 기사가 마치 수동적인 공에 해당하며, 쓰는 이는 공에다 움직임을 주고, 읽는 이는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구실을 한다. 이 비유를 한걸음 더 진행시켜보면, 공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속구든 변화구든 솜씨 좋게 받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읽는' 경우도 온갖 종류의 정보를 될 수 있는 대로 솜씨 좋게 잡을 수 있는 기술이 없으면 안 된다.
투수와 포수는 호흡이 딱 들어맞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 것인데, 쓰는 이와 읽는 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쓰는 이가 전하려고 생각했던 것이 읽는 이의 미트에 푹 들어갔을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한다. 숙련된 필자와 숙련된 독자의 호흡이면 딱 들어맞는 것이다.
한마디로 필자라고 해도 각양각색이다. 조절을 썩 잘하는 필자라면 전해야 할 내용을 잘 알고 있어, 상대편에게 확실히 그것을 전할 수가 있다. 폭투하는 필자보다도 이러한 필자 쪽이 독자로서는 받아내기 쉽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이 야구의 비유가 들어맞지 않는 한 가지 점이 있다. 공은 단일의 물체다. 그러므로 완전히 받아낼 수 있거나 없거나 할 뿐이지만, 책은 공처럼 단순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낸다'고 해도 그 받아내는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필자의 의도를 아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이해하는 독자도 있다. 어느 정도로 잘 받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독자의 적극성과 숙련도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독서의 기술/모티머 J 애들러(외) 1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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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나는, 환상의 배터리라는 뜻이네.^^ 하루키! 던져! 멋지게 받아주마!!! ㅎㅎㅎ 나에게 최근에 폭투를 던진 작가는....누구였더라? 여러분은 어때요? 어떤 작가와 멋진 배터리이고, 최근에 못 받은 공(책)은 누구의 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