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걸까?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예술영화가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지적허영심의 발로일 뿐이었고....대학에서 남편감과 연애하며 맨날 액션영화만 보다 보니, 어느새 사색적인 영화에는 인내심이 떨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씨네21 정기구독하며 얻은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장르영화>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장르영화가 별거냐? 영화평론가들이 맨날 인색하게 별을 두 세개만 흘려주는, 대중적인 영화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하나같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건 블록버스터형 장르영화 쪽이야>하고 잘난 척 말하면, <어~ 그래?> 하면서 뭔가 존경 비슷한 시선을 던져주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장르영화가 뭔지 잘 몰랐겠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맨 인 블랙이야> 했다면 그런 시선 안 나왔을 것이다. 헤헤...나도 참...유치했다.^^;
그런데, 요즘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이 낳기 전에는 비디오 보다가 잠든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어찌어찌 살다보니, 여름에 놓친 빵빵한 블록버스터 비디오도 보다가 잠들 때가 많다. 그럼...요즘의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거야?
어제,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서 그 답을 얻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초컬릿 아이스크림 장르>이다. <초컬릿 아이스크림 장르>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르는 초컬릿 아이스크림 장르다."고 말하면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다...는 건 뻥이고, 내가 만든 말이다. 헤헤. 뭐냐하면...보고 있으면 달콤하고 나른한 기분이 드는,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을 제공해 주는, 행복하게 끝나고 엔딩 자막과 함께 잊어도 되는, 그런 영화다. 아마도 요즘의 나는, 영화 속에서 현실의 팍팍함을 달래주는 환상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러브 액츄얼리는 그런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 시켜 주었다. 이 영화 속에는 스물 아홉 어린 아줌마가 꿈꾸는 최고의 결혼식, 최고의 장례식, 최고의 사랑고백이 말랑말랑하게 토핑되어 있다. 아~ 그것이 그냥 환상이라는 것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그 순간은 보기만 해도 행복한걸?^^ 게다가 환상을 한결 높은 수준으로 갈무리 해주는 멋진 음악까지! 어제 밤, 컴컴한 거실에서 볼륨을 죽이고 본 이 영화는, 오랜만에 내 취향에 쏘옥 들어맞는 것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좋아하는 장르가 하나 있군. 바로...<야한 영화>^^ 고등학교 때 나는 잘만 킹 감독의 팬이었고, 대학 때는 지금의 서방님을 꼬드겨 <옥보단>을 극장에 가서 관람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