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듣고 계시는 음악은,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 <대황하>입니다.

웬티크(가명)님의 서재에 코멘트를 달다 보니 추억과 상념이 꼬리를 잇다가 그 끝에 이 곡이 떠오르더군요.

고 3때 제게는 만화를 사랑하는 짝꿍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 아직 고 3이라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이미 독특한 정신세계를 완성한, 연구가치가 있는 인물이었죠. 그녀의 집 다락방에는 만화가 세 가마니. 그것도 엄마가 몇 가마니 져다가 버렸다는데도 평균 보유량이 그랬습니다. 매니아라는 표현, 아니 개념 자체가 완전히 생성되지 않은 시기라고 기억하는데, 이 친구가 진정한 매니아였지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김진의 '바람의 나라'였던 그녀는, 바람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비교 분석하며 읽어냈더랬습니다. 김혜린의 '비천무'가 마음에 들면, 그 배경을 이해하고자 '한단고기'를 찾아 읽구요. 저는 그 때, 한단고기가 한(一)단의 고기(肉)인 줄 알았지요...-.-

당시 저는 교우관계가 원만...하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여하간에 친구는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모두 개성만점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개성이나 카리스마가 없다고 느껴서인지, 보고 있노라면 그 주변에만 이상 기류가 일어나고 있는 듯 한 친구들....즉, 기이한 오오라(?)를 지닌 개성파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지요. 이상한 것은, 이 개성만점 친구들도 모두 저의 간택(?)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만화 세 가마니의 친구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오오라가 강렬한 아이였습니다. 취향도 독특했지요. 그녀는 제 모든 것, 그 중에 특히 제 얼굴을 좋아했답니다. 그 이유 한 번 기도 안 막히니....전형적인 몽골리안의 얼굴이라나요. 쌍꺼풀 없는 눈, 두드러지지 않는 코, 적당히 두툼한 입술....뭐 그런 것이 전형적인 몽고인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 얘기를 듣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이 친구는 만화와 더불어 고양이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 도시락을 남겨서 학교 쓰레기장에 사는 도둑고양이들에게 주곤 했지요. 제 눈에는 다 그 놈이 그 놈인데, 친구는 용케 하나하나 구별하더군요. 가족 돌볼 줄 모르고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이유로 수코양이들은 쫓아버리고, 새끼나 암코양이들을 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경계심 많던 고양이들도 고3이 막바지에 이르자 도시락을 들고 나가면 미리 와서 기다리곤 했어요.

독학으로 별자리와 점성술도 공부했더랬습니다. 친구가 말해주기를,  저는 물고기자리의 중앙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물고기자리 사람이래요. 감수성, 눈물, 자기연민....지금도 생각나는 물고기자리의 몇 가지 특징입니다. 손금을 봐 주면서는, 나중에 대단한 권력자의 아내가 될 것이라 예언해 주기도 하구요. 지금 봐서는 별반 신뢰가 안 가지만, 혹시 모르지요, 울 남편이 대기만성형인지. ^^;;;

당시 저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종종 빠져나와 MTV를 녹화해서 틀어주던 영상음악실(타 지역과 달리 여수에서는 제법 번창한 문화사업이었지요.^^)에 가서, 뮤직비디오에 빠져 있다 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를 듣게 되었지요. 와아....영혼의 떨림, 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독특한 취향의 친구와 오래 지내서인지, 제 이상형도 어느새 변질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나이 지긋한 동양남자의 눈빛에 홀랑 빠져버렸지요. 소지로는 사실 일본 사람인데, 스타일을 보면 딱 대륙에서 말을 달렸을 법 한 중국인 같거든요. 결국 어느 날, 저는 친구까지 꼬드겨 나와 그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고, 그 후 소지로는 친구와 저의 공통 이상형이 되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친구도, 소지로의 오카리나도. 그런데 서재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자꾸 그 친구가 떠오르네요. 여러 면에서 늘림(가명)님과 비슷한데...슬쩍 물어보니 성이 다르더라구요. 그 성질에 시집이나 갔으려나....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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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오카리나 연주도 너무 멋지고, 진우맘님의 추억도 아름답군요. 세가마니 친구분은 정말 어떻게 지내실까요...독특한 그분의 세계, 너무 멋진데. 그나저나 진우맘님 얼굴을 좋아하는 독특한 이유를 보니, 쿨핫의 마이오가 생각난다는. ^^ 음악에 취해있다 갑니다~

호랑녀 2004-03-2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잘 듣고 갑니다. 이 음악, 저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이 음악을 틀었더니 어떤 남자가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한 이후로는... 집에서 틀지도 못하고... 그렇게 잊혀졌더랬습니다.
도서실 한가득 음악 볼륨 올리니... 정말 좋네요...
혹시 그 친구 찾거든, 뒷얘기도 올려주세요.

마냐 2004-03-2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잊고 지낸 친구 얼굴이 한둘 떠오르는게...진/우맘님의 감정이 그대로 전염되는 기분입니다....호랑녀님 말씀처럼. 뒷 얘기가 기다려지는군요.

진/우맘 2004-03-3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할려나? ^^;;

책읽는나무 2004-03-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멋지네요...지금 옆에서 민이 두팔을 올려 음악에 맞지 않는 덩실덩실~~ 디스코춤(?)을 춥니다.....제가 볼땐 진우맘님이 진정한 낭만을 잘아는 여자인듯하네요...님덕분에 그감정 그대로 느껴보고 가네요...아~~ 나도 갑자기 내친구들도 하나 둘씩 떠오를려고 하네요...^^

진/우맘 2004-03-3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민아, 너의 feel을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이 음악에 디스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