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 예전엔 그렇게 끼고 살던 씨네21도 못 본지가 한참되어, 영화 소식에는 영 밝질 못하다. 태극기...대충은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이런 종류의 영화에는 꼭 딴지 거는 사람들이 있다. 장르 영화는 무조건 무시하고, 화면에 줄 갈 지경인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모두 다 봤어야 할 명작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나는 이 영화가 대충 마음에 들었던 고로...아무도 걸지 않은 몇 가지 딴지에 반박해본다.
1. 뻔한 영화다? 소재주의다?
그렇다. 이 영화, 사실 전반 10분만 보면 전개와 결말이 뻔하게 드러난다. 전쟁과 형제애라는 강력한 소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줄거리가 조금은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아주 촌스럽게 포장하면, 딱 설날 특집 효도용 신파극 감이다.) 그러나, 뻔하다고 해서 다 우스운 것일까? 내가 볼 때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집단 무의식에 호소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하면서도 모두를 울게 만드는(안 울었다고? 그럼 말고.) 그런 소재를 골라, 제대로 '영화화' 하는 것도 보통 재주는 아니다.
2. 투 톱, 꽃미남 특수를 노렸다?
그렇다. 영화 전반부, 흙검댕 속에서도 환히 빛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은 가히 눈부실 지경이었다.(이쁜 것들은 흙칠을 해도 이뻐!) 그런데 이러한 감동이 끝까지 영화를 지배하리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자, 그저 예뻐서 행복하던 그들의 얼굴은 잊혀졌다. 이것이 결코, 얼굴에 묻힌 흙의 양이 많아져서만은 아니니라. 장동건은 <친구>에서 선 굵은 연기로 이미 <미남배우>의 굴레를 어느정도 벗어난 상태였는데, 태극기에서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것 같다. 문제는 원빈. "형! 같이 가기로 했잖아!", "미쳤어! 형은 미쳤어! 왜 그래!"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사실 "얼마면 되겠니!"의 절규에서 몇 발짝 나아가지 못 한 것 같다. 그러나...절규와 광기만이 연기인가? 우리는(?) 이 영화에서 전반 10~20분의 원빈을 주목해야 한다. 18살이라고 봐주기엔 좀 심하게 해맑던 소년. 징병 열차 창에 매달려 "엄마! 엄마!"를 외치는 그 목소리, 그 모습은 관객 모두에게 꼭 보듬어 달래주고 싶은 짜안함을 200% 맛보여준다.(흐흐흐...물론, 짠하지 않아도 언제나 보듬어 주고 싶기는 하다.^____,^)
3. 뭔가...위험한 발상이 숨어 있다?
사실 나는 영화의 감춰진 속내를 읽어낼만큼 예리하고 똑똑하질 못하다. 그래서 그들이 이 영화의 위험한 발상을 뭐라 이름붙일지는 모르겠다. 국가주의? 이념분쟁? 극우보수? 좌익옹호?(저 오락가락한 단어의 나열에서 나의 무식이 탄로나는 바이다.^^;;;) 여하간 실미도에도 딴지가 걸렸다 하니, 태극기에도 뭔가 태클을 걸어올 것 같기는 하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극우 아니냐고 무수한 항의가 빗발쳤다지 않은가.(부지런한 넘들...개봉되지도 않은 제목에 태클을...) 그러나 이 아줌마, 오감 이후의 육감을 길러온지 어언 6년...영화의 위험한 발상을 역사와 정치에 기반한 학구적인 발언으로 정리하지는 못해도, '이거 뭔가 찜찜한데~'하고 석연찮아 할 정도의 feel은 있다. 내 볼 때 <태극기~>는 위험한 시도를 할 여지가 곳곳에 충분히 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피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직유던 은유던, 관객의 머리에 뭔가를 주입하려는 시도는 없었던 듯 하다. 영화의 그런 점을 들어 감독이 생각이 없느니, 용감치 못하느니 하고 매도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뭐, 이건 근거도 논리도 없는 한 아줌마의 feel일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잘 운다.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도 펑펑 울었고,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울었다하니 주변인들이 모두 신기해 했다.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울었냐고. 여하간, 남들은 막바지에서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난 초반부가 더 슬펐다. 감독...나중에 눈물나는 회상신으로 넣으려고 이쁘게도 나가더라. 아이스께끼, 손수건, 물놀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리얼한 전쟁신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태극기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기에 그 리얼함이 한층 더한다. <태극기~>가 내 머리에 뭔가를 심어 놓은게 있다면, 그것은 위험한 발상도 아니고 너무 당연해서 유치찬란하기까지 한 <반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