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의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3. 대화

아빠, 무섭지 않아?

아냐, 어두워.

인제 어디 갈 거야?

가봐야지.

아주 못 보는 건 아니지?

아니. 가끔 만날 거야.

이렇게 어두운 데서만?

아니. 밝은 데서도 볼 거다.

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 거야?

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

여기서는 재미없었어?

재미도 있었지.

근데 왜 가려구?

아무래도 쓸쓸할 것 같애.

죽어두 쓸쓸한 게 있어?

마찬가지야. 어두워.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

아빠 나라니까.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돌아가셨잖아?

계시니까.

그것뿐이야?

친구도 있으니까.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주는 친구는 뭐 해?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은 아무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눈사람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시인의 용도2]

하느님, 내가 고통스럽다는 말 못 하게 하세요.

어두운 골방에 앉아 하루종일 봉투 만들고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 노파를 아신다면.

하느님, 내가 외롭단 말 못 하게 하세요.

쉽게는 서울 남쪽 변두리를 걸어서

신흥 1동, 2동 언덕빼기 하꼬방을 보세요.

골목길 돌아서며 피 토하는 소년을 아신다면

엄마를 기다리는 영양 실조도 있었어요.

 

하느님, 내가 사랑이란 말 못 하게 하세요.

당신의 아들이 왜 죽은 줄도 모르는

먼지 쓴 신자의 회초리가 드세기도 하더니

세계의 곳곳에는 그 사랑의 신자들 가득하고

신자에게 맞아 죽은 신자들의 시신.

내 나라를 사랑해서 딴 나라를 찍고

하느님 영광을 찬송하는 소리 들어보세요.

고통도, 사랑도, 말 못하는

섭섭한 이 시대,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나는 확실히 예민하고 깐깐하다. 남들이 그냥 허허실실 넘길 수 있는 일에 왜 이리도 까탈스럽단 말인가? 요 며칠 웃겼던 이야기들 -

1. 얼마전 언급한 그 MBA의 부인 왈, 남편이 시카고대학 경영대에 지금부터 매년 기부를 할거라고 한다. 그럼 지금 세돌 지난 그 아들 나중에 입학이 쉬울거라고. 역시 돈이 튀는군. 매년 도대체 얼마나 기부를 한다는 걸까? 100만원 정도 내면 낯간지러워 명단에서 이름 찾기도 힘들텐데 1000만원은 내려나? 얼마를? 그 애가 학교갈 나이가 되려면 20년 정도를? 알 수 없군... 혹시 본인도 돈 내고 들어오셨나? 미국서도 돈 낼 쟁쟁한 가문이 줄을 섰을텐데 변방국인 한국서 얼마나 내면 받아줄까?

2. 여기서 알게 된 언니가 말한다. 자기 애-만 5세-와 놀고싶어하는 만 4세 아이가 있다는 말에 그 애랑 자기 애랑 같은 유치원 다니는데, 유치원 처음 가던 날 그 애 엄마가 자기 뒤에서 하는 말을 들었단다. @@와 놀면 안돼! 하는 소리를. 물론 자기는 이해한다고.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한국애들끼리 어울리는걸 좋아하겠냐고, 하지만 어쨌건 그 소리를 들은 이상 같이 놀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나는 영어 한마디도 못해 친구랑 못 노는 우리 딸이 안스러워 한국 친구 있으면 서로 의지가 되지 않겠나 싶은데 -영어야 차차 배우겠지. 듣는 소리도 다 영어인데- 남들의 애들은 다 꿋꿋한가 보다.

3. 한 다리 건너 들은 다른 MBA의 부인은 여기서 만 4세인 딸의 유치원 선생님 3명에게 -왜 3명이지? 보통 정교사 한명에 보조교사 한명, 이렇게 두명인데?- 금목걸이를 선물했단다. 그리고 어느날 유치원에 갔더니 자기 딸의 머리카락 사이와 눈꺼풀 속에 모래가 들어가 있어서 선생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놀다 그랬다고 한다면서 분개했단다. 설마 스스로 그랬겠냐고, 남이 한 게 분명한데 금목걸이도 받았으면서 자기 애도 잘 안 돌봐준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서 선생노릇을 4년밖에 안했다. 애 낳으면서 계속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이 5년까지 된다. 여기 올 때 다시 휴직을 하라는 -배우자의 외국체류시 동반휴직이 3년씩 두번까지, 총 6년이 가능하다. 이 얘기 들은 남편의 지인들이 왜 선생하려고 하는지 알겠다며, 10년을 쉬어도 복직이 가능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교감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사직을 하고 왔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생략하고... 선생하다가 휴직하니 동네 아줌마가 내가 전에 선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는 내게 물었다. 엄마들이 선물할 때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아냐고. 눈을 빤히 뜨는 내게 아줌마는 얘기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말한다고. 나도 못쓰는 외제 화장품을 남편 출장때 면세점에서 사서 선물했더니 우리 애 상장 하나도 안 준다고... 너무 놀랐다. 나는 학부모에게 자기 애 잘 봐달라는 뇌물같은 선물을 받는 선생의 욕만 듣고 살았지 -특히나 남편에게- 선물 주면서 상장주겠지 하고 바란다는 학부모 얘기는 난생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선물은 뇌물이라더니 주는 X나, 받는 X나... 한국서 추태얘기는 넘치고 넘치게 들었는데 여기서도 들린다. 뉴저지쪽에서는 크루즈 여행권까지도 준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 엄마들이 미국 선생 물들였다는 소리도... 짜증이 난다. 욕지기가 치민다.

 

시인이 찾던 친구는 다 시인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시인이 그 존재때문에 간다는 그 아버지는 수십년전 불안한 조국의 정세를 걱정하며 도미를 권했듯이 다시 되돌아가기를 원했을까? 찾던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들의 말을 확인하고 돌아갔나? 눈사람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나겠다더니, 알고보니 이미 눈사람이 다 되어 있어 가던 길 멈춰서서 돌아왔나? 등불이 있어도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안 보였을까? 쓸쓸함이 사라졌나?

그렇다해도 나는 아직 시인처럼 친구들이 그립다. 그래서 간다. 여기는 한인이 적어서인지 -교민들 사는 곳에 가면 많겠지만 그래도 달라질 게 있을까?- 맘 붙일 사람이 없다. 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다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 많으니 정규분포로 봤을때 여기보단 났겠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김형경씨의 말에 의하면 타인을 싫어하는 것은 내게도 그런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 많은, 무식한 MBA의 부인을 싫어하는 것은 내가 그런 부를 갖지 못한 시기심때문일까?-아이들 놀이모임의 새로운 일원으로 들어와서 안볼래야 안 볼 도리없이 매주마다 얼굴을 본다. 고행이다. 아니 득도의 계기가 되려나?- 나도 돈이 많아지면 그렇게 되는 걸까? 다시금 시인의 시로 돌아가자.

 

[쥐에 대한 우화] 중

2. 부자가 되는 법

부자가 되고 싶어 궁리하던 사람이 연구 끝에 고양이 한 쌍과 쥐 한 쌍을 샀지. 고양이도 번식이 빠르기는 하지만 쥐들은 일 년에 서너 번씩 새끼를 낳고 본능이 빨라 새끼 쥐도 몇 달임녀 번식하는 법을 금방 배워 일 년 만에 고양이떼와 쥐떼를 가지게 되었지. 사료값이 없는 주인은 자기 연구대로 한 떼의 쥐들을 잡아 고양이 사육장에 집어넣으면 굶주린 고양이떼가 그 쥐를 잡아먹고 새끼를 까고 그래서 고양이가 너무 많아지면 한 무리 죽여서 그 털과 가죽을 팔아 돈을 모으고 죽은 고양이의 살과 내장은 쥐들에게 사료로 먹이면 쥐들은 그 고기 먹고 또 살이 찌고. 고기 먹고 살찌고 새끼 많이 깐 쥐떼를 또 절반쯤 고양이 사육장에 쓸어넣으면 고양이떼는 뒤잡아 죽이기로 이리저리 뛰어 적당한 운동과 유희가 되고 성찬이 되어 살이 찌고 새끼를 까고...... 그러면 한 달에 한 번쯤 인부를 두어 이제는 수천 마리씩의 고양이를 잡아 털과 가죽을 벗겨 말려서 팔면 주인은 자꾸 부자가 되고 죽은 고양이의 고기는 다시 번식하는 쥐떼들의 사료가 되는 거지. 원수를 갚듯 잘들 먹겠지. 부자가 된 주인은 좋아서 원수를 갚듯 서로서로 자꾸 먹어라, 그래서 온 세상이 내 쥐떼와 고양이떼로 덮여라 하지만, 나는 좀 슬퍼지더군. 부자가 되는 길이 어떨 때는 이렇게 무섭고 슬플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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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10-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읽기엔 너무 찡~한 내용인데요.
잘 읽고 갑니다.

미즈행복 2007-10-19 07:54   좋아요 0 | URL
왜들 기를 쓰고(?) 오려고 하나, 왜 오면 안가고 눌러앉으려 하나가 항상 궁금했는데 오늘 그 이유에 해당하는 얘기를 하나 들었어요. 아는 사람의 오빠가 콜로라도에서 MBA했는데 마땅한 직장을 못구해서 관광비자로 다시 콜로라도주의 덴버에 와서 수퍼마켓을 차렸대요. 유학해봤으니 현지 사정은 거의 알고 있었다나요? 근데 온 지 3년되었는데 제법 돈을 많이 벌어 작은 오빠까지도 불러들이려고 한데요. 동네에 세탁소가 내년에 하나 나오는데 독점인데다가 일은 다 멕시코사람들이 하고 관리만 하는데도 월 800이상은 번대요. 그러면서 그러더군요. 한국서는 사오정이니 뭐니 하는데, 퇴직해도 별 것 없는데 와야되지 않겠냐고요. 결국은 돈이 많다는 것이 이유겠지요. 아는 사람 하나도 남편이 여기서 건축석사하고 취직했는데 한국의 동종업계보다 월급이 2.5배는 많다면서 영주권 신청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눌러앉겠다고요. 그래서인가봐요. 결국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