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제가 알고 있는 아줌마들은 애 어릴 때는 애가 먹다 남긴 이유식, 심지어 간이 안되어서 맛없

는 이유식도 먹고, 남은 반찬이며 그런것들이 아깝다고 그릇을 다 비우고 설거지하는 아줌마들입

니다. 남들에게 말하면 다들 너무 훌륭하다고,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고 감탄하는 우리 시어머

님조차도 -엄청 관대하고 인자하고 간섭안하고 그러시죠- 남편에겐 먹기 싫으면 남기라고, 네 뱃

속이 쓰레기통이냐고 하시면서도 저보고는 너는 살이 더 쪄도 된다는 당토 않은 이유로 이거 남은

거 우리 둘이 다 먹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아줌마들에 비하면 저는 아줌마 근성이 부족한가

봅니다. 애 어렸을 때 남긴 이유식 먹은 적이라곤 단 한번도 없고, 먹기 싫으면 아까운 생각없이 다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리니까요. 싫어하지만 하도 해 먹을게 없고, 먹던 것만 먹어서 질린 생각에 엊

그제 한 카레가 일인분 분량이 남아있는 이 오후, 보통 아줌마같으면 점심에 혼자 해치웠을텐데 그

냥 버리기로 냉정히 마음먹고 라면을 끓이고 있습니다. -딸은 드디어 6개월이나 논 끝에 어제부터

유치원에 갔고, 아들은 쉬폰케잌을 만들어 먹였습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들어간 올리브유의 양을

생각하니 저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하긴 라면도 칼로리 엄청 높기는 마찬가지지만, 더구나 밥

도 말아먹을거면서-

 

아, 언제 아줌마 본성을 익히려나...

그리고 언제 이 까다로운 입맛이 바뀌려나...

 

생각해보니 제 까다로운 식성이 이곳 생활을 힘들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더군요. 채식주의자는 아

니나 육식을 싫어하고 -여간 맛있지 않으면 안 먹어요. 사리원 불고기와 벽제갈비는 이 까다로운

고기입맛을 통과한 몇 안되는 식당이지요. 고깃국도 안먹어요. 설렁탕, 갈비국, 육개장 등등- 패스

트푸드 거의 안 먹고, 그렇다고 야채 샐러드 먹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타이음식, 베트남 국수나 월

남쌈 같은것도 싫어하고... 그러니 외식할 데가 없고, 하루 세끼를 해야하니 버겁지요. 먹는게 뭐냐

생각해보니 생선전, 찌개종류, 감자등의 뿌리식품, 소시지종류, 두부류, 뭐 그런거네요. 몇개의 나

물과 생선구이나 조림, 젓갈, 각종 김치류등... 그러니 여기서 먹을게 뭐가 있겠어요? 

 

입맛때문에라도, 식성이 까다로와서라도 여기서 오래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 같으

면 외식할 데가 많은데... 다 한식이니...

여기 한식당이 좀 있긴 한데, 멀어서 그냥 밥하기 싫다고 후딱 가거나 하게 되진 않아요. 오가는 시

간 생각하면 그냥 제가 하게 되지요. 그리고 멀리 갈만큼 맛있는데도 거의 없고.

이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예전에 친정 엄마가 무지 고생하셨는데, 지금은 제가 그 죄값을 받고 있

네요.  아, 라면 먹어야겠다. 카레는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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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식당이라고 해봤자 한국에서 먹는 먹이 절대 날리가 없겠죠..^^
전 그쪽 나라 한식당에서 냉면을 먹고는 그때 그 오묘한 맛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있습니다. 세상에 비빔냉면에 상추를 뜯어서 넣은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미즈행복 2007-09-10 11:50   좋아요 0 | URL
맛있으라고 넣은것이겠죠. 야채도 한국것이 다 구비된 것은 아니니까요. 근데 오이는 여기도 있는데 오이를 보통 넣지 않나요? 대체로 보니 다 MSG 맛이 나던데요? 저도 여기서는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먹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섞어서 먹고 있거든요.

비로그인 2007-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아줌마 근성하고는 상관없는 듯 ^^
사실 한국에 있다고 해서 외식을 많이 하게 되시진 않을거 같아요.
미국에 계시는 동안 뭔가 즐기실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당분간은 계셔야 하니 있는 시간이 괴롭지 않도록 뭔가 변화를 줘보세요 :)

미즈행복 2007-09-10 11:51   좋아요 0 | URL
이제 드디어 딸이 유치원을 가게 되어서 -그간 빈 자리가 없어서 집에 있었거든요- 좀 나아질 것 같아요. 둘째만 데리고 버스로 여기저기 놀러다닐 수도 있으니. 혼자서 둘 데리고 다니기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요. 체셔님께서도 이런 날이 오실테니 그 땐 이해하시겠죠?^^

뒹굴이 2007-09-0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는 음식 버리면 죄책감은 들기 마련이지만, 그거 미련스럽게 먹는 건 굳이 권장하고 싶지 않음. 그게 무슨 아줌마 근성? 아줌마의 현명함이라면 차라리 음식을 남기지 않을 만큼 정량을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음식 남는다고 억지로 먹으면 몸에 안 좋아. 굳이 배우려들지 말어. ^^

태국 음식도 싫어한다니 그건 좀 의외다. 태국 음식은 그나마 맛이 대중적이라서 범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던데. 우리 부부는 태국 음식을 무진장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먹으러 가거든. 팟타이나 Pad See Ew 같이 좀 만만한 메뉴를 택하면 먹을 만하지 않을까 싶네. 혹시 스파게티는 좋아해? 예전에 잘 먹으러 다녔던 거 같은데, 아닌가? 슈퍼 가면 토마토 소스랑 크림 소스 병에 든 것 팔텐데, 그거 사다가 집에서 해 먹어 봐봐. 거의 라면 끓이는 수준으로 쉽고 간단해. 남편이 학교에서 전자레인지를 쓸 수 있는 환경이면 도시락으로도 괜찮고. 집에서 요 며칠 크림소스 파스타를 만들어 봤더니만 맛이 괜찮아서 나중에 내 싸이에 레시피 올리려고 하고 있음. 관심있으면 참고하렴. 그럼 잘 지내고. ^^

미즈행복 2007-09-10 11:56   좋아요 0 | URL
동남아 음식의 그 독특한 향신료가 싫어. 죽으나 사나 한국 아줌마로 살아야할듯...
스파게티도 해 먹지. 근데 어쨌건 한국 음식을 주로 먹는데 슈퍼는 멀고 -1시간 남짓- 파는 것도 많지만 한국같지는 않으니 자꾸 해먹는게 겹치고 그러다보니 지겨울 수 밖에...
밥만 먹는것도 아냐. 떡볶이, 떡국, 치즈마카로니, 베이컨 얹은 구운 감자 등 다양하게 먹어. 그럼에도 힘들다는... 한국서는 입맛 없으면 사먹으면 그만이잖아. 그게 힘드니 말야. 그리고 오로지 흰밥만 고집하는 더 한국적인 딸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