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이 2007-08-27  

내 싸이에 같이 한참 썰 풀어 놓았더랬지? 안 그래도 내가 요즘 재외교포들한테 유감이 많았던 차라 글이 그 쪽으로 많이 흘렀는데, 다시 네가 남겨놓은 글을 보니 촛점이 그 쪽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좀 튄 거 같더라구.

너 거기서 힘든 거야 나도 잘 알지. 심지어는, 그 모두가 인정하듯이 다분히 한국인답지 않은 나조차도, 처음에 여기 왔을 때 힘들었는데. 영어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건 그다지 상관없었던 거 같아.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익숙해질 때까지는 아무튼 뭐든지 힘들어. 그나마 그 힘든 시기가 나같은 경우에는 남보다는 좀 빨리 끝난 것일 뿐, 처음 외국 나가면 다 힘들기 나름인 거 같아.

그래도 긴 안목으로 네 인생을 보면, 지금의 미국 생활이 너에게 무언가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봐. 이를테면, 지금까지 몸 담그고 살았던 문화권을 벗어나 다른 문화권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잖아. 지금까지는 남의 시각으로 봐야 했던 다른 문화와 세계를 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지.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런 것을 발견하는 것도 네 인생의 큰 소득이 될 거야. 그러다 보면 우리 문화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거고.

남편 친구들이나 동료들 중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집에 불러서 밥 한 번 먹여 봐. 의외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걸. 지금은 전보다 좀 좁은 집으로 이사와서 손님 부르기 놀이는 자제하는 편이지만, 지난 번 집에서는 엄청 불러다가 해 먹였지. 진짜배기 한국음식으로다 말야 (음식이 너무 매워서 쩔쩔매는 모습을 즐기는 건 보너스지. 음하하하!). 게다가 중요한 건, 누군가를 너희 집으로 초대하면 네 홈그라운드에서 펼치는 게임이 되는 거거든. 주도권이 너에게 있다는 뜻이지. 그러다 보면 그 사람들과 긴장감없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해. 그 쪽에서도 답례로 초대할 수도 있고, 오고 가고 하다 보면 점점 교류가 넓어지더라구.

아무튼 난 네가 거기 가 있는 동안을 기회로 삼았으면 하고 늘 바라고 있어. 너 원래부터도 사람들 관찰하고 사람들 생각 읽고 하는 거 좋아했잖니. 생활이 빠듯하고 신산해도 아무튼 그 곳에 있을 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고 왔으면 좋겠어. 그 '누린다'는 것이 그냥 애들 영어 교육 시키고 그런 건 아니라는 거 잘 알지? 서로 살다가 피곤해지면 인터넷 상으로라도 같이 주절거리고 그러자.

아참, 그리고 요즘 데이빗 듀코브니 주연의 새 드라마 하는 거 같던데. Californication이라고, 거기서 하고 있지 않아? 여기서는 오늘 첫 회 시작한다던데. 나도 자막 없으면 반 정도나 알아들을까 말까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엄청 기대하고 있는 중. 그래도 미국 TV는 호주 TV 보다 낫잖니. 난 호주 TV 틀어 놓으면 한숨만 나옴. ^^

 
 
미즈행복 2007-08-2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다른 문화와의 만남? 홍세화씨가 생각난다.
그러나, 물론 단편적이긴 하나 여기 문화와의 만남이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다. 글 올렸듯이 교통사고나 은행의 그런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 그리고 딸의 유치원 옮기는 과정에서 있었던 유치원 디렉터와의 감정싸움은 -이건 안 올렸는데, 물론 여기 문화라기보다는 그 개인이 좀 안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다. 딸이 다니기에 너무 어린 유치원이라 써머만 하고 가을부터는 옮기겠다고 말했는데 웃고 있다가 표정이 싹 바뀌더니만 어디로 가냐고 추궁하듯 물어대는거 있지. 몇번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너무 추궁해서 말했더니 아주 불쾌해 하더라고. 그래서 정말 너무 간이 떨리고 그날 하루뿐만 아니라 며칠을 기분이 나빠있었다- 늙은 여자라 그런건가? 서양 백인 할머니는 서양사람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하니 말이다. 여하튼.
신랑의 동료? 네 신랑이야 연구실 있으니 동료가 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 신랑은 동료가 없다. 아는 한국인 학생들만 있을뿐. 스터디에도 안 껴준단다. 외국인은. 아무래도 영어가 딸리니 진도가 느리게 마련이고 그걸 못참는단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들끼리, 일본인들은 그들끼리, 한국인은 그들끼리 스터디한단다. 이게 다른 문화와의 교류인가? 누리는 건가? 무엇을? 유치원에서 만난 엄마들과 친구가 된다? 천만의 말씀. 다들 바쁘다. 너는 잘 모르지만 글을 보니 멕시코 애, 홍콩 애, 일본 애들과 친구하나 본데, 여기서 차라리 그렇게 중국애, 일본애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들 이방인이니. 하지만 백인 여자와 친구? 해준다는 사람이 없다. 물론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나 우리 신랑이나 그런 구변이 없다 . 그리고 그럴 영어도 안되고. 친구? 친구는 없고 돈 주면 영어로 대화해주는 알바생을 구할 수 있겠지. 다른 문화와의 만남? 글쎄, 모르겠다. 내가 나갈 일도 별로 없고, 내가 가는 범위내에서는 그런 여유있는 사람이 없고.
원래도 유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쌓여 더욱 성질만 늘어가는 것 같다. 애들한테도 화풀이만 하고 소리만 지르는 것 같고.
나는 여러 문화와의 접촉 안해도 좋으니 그냥 한국서 편하게 살고 싶다. 맛난 것 먹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나 싶어 우울하다.

뒹굴이 2007-09-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로서는, 무언가 네 우울함을 타개할 만한 방법이 없을까 하고 이것저것 제안해 본 것 뿐이야. 네 상황이 그 정도라면, 나로서도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어쩌면 시드니가 시카고보다 좀 더 유연한 도시인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애들은 백인이건 아시아인이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꼭 남편 일하는 환경 뿐만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경우를 봐도.

처음 계획대로 너 먼저 아이들이랑 귀국을 할 생각인지? 정 그렇게 힘들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다. 아무튼 있는 동안만이라도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지 않길. 그런 게 쌓이다 보면 결국은 해롭잖니. 네 푸념 보면 난 늘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