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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헌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5
존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살인의 추억>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FBI도 만들고, 비행기도 타면서 수사를 하지만, 한국은 몇 발자국만 걸으면 끝에서 끝이라 두 발로 신나게 걸어서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과연 그 말대로 미국 땅은 넓고도 넓다. 게다가 인구도 어제 신문에서 보니 3억명을 돌파해 세계 3위의 인구 대국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다보니 필연적으로 잔인무도하고 흉악한 연쇄살인범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총기 소유까지 자유로운 나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인드헌터>는 잔학한 연쇄살인범들과 대결한 FBI수사관 존 더글러스의 실제 수사 기록을 담아낸 논픽션이다. 그는 최근에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해 일약 유명해진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을 고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FBI 수사지원부의 부서장으로 재직하며 가장 많은 연쇄살인범을 체포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사관 중 한 명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논픽션이라니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산이었다. 이 책에는 실제 사건의 현장에서 뛰었던 자만이 알려줄 수 있는 범죄 현장의 생생함과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범인을 옭아매는 두뇌싸움, 추격전의 스릴이 흥미롭게 녹아들어가 있다. 특히 범죄학과 심리학, 교육학 등에 조예가 깊은 작가가 연쇄살인범과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정리한 행동과학이라는 연구의 면면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당시 행동과학부에는 나중에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밥 레슬러를 비롯한 살아있는 수사관의 전설들이 포진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행동과학과 범죄심리학 등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고, 관련 도서들을 좀더 읽어볼 계획이다.
이 책은 존 더글러스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일화를 자서전 형식으로 풀어낸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인생의 굴곡을 거쳐 FBI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여대생만 골라죽여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에드 캠퍼 사건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는 교도소를 출입하며 연쇄살인범계의 대스타들, 찰리 맨슨, '샘의 아들' 데이비드 버코위츠 등을 인터뷰하며 범죄자의 본성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된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그는 연쇄살인범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심리를 읽고, 범죄 현장을 마음의 눈으로 재구성하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고안한다.
존 더글러스와 그의 유능한 동료, 부하들은 이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수많은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그가 맡았던 사건은 그야말로 별 게 다 있었는데, 숲 속으로 창녀를 유인해 벌거벗긴 다음 도망가는 여인들을 사냥한 자부터, 열 명의 흑인 어린이만 골라 죽인 자를 비롯해 끔찍하고 기상천외하다. 만약 존 더글러스가 없었다면 분명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것이기에 그는 충분히 이런 회고록을 쓸 자격이 있다. 그는 누구나 선뜻 말하기 주저하는 사형 제도의 지지자라는 것을 숨김없이 밝힌다. 아닌 게 아니라, 여자의 배를 칼로 갈라 그 안에 사정하는 흉악범들을 두루 보아온 그에게 살인자의 인권 따위를 논하는 것이 우습게도 보인다.
나는 미국 사회를 떨게 만들었던 강력 범죄들이 거의 모두 나오는 이 책을 대단히 재미있게(?) 보았다. 때로는 오싹했으고, 가끔은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으며(한 사건의 희생자인 소녀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특히 그렇다), 의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다수의 연쇄살인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정신이 병든 자가 분노와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엉뚱한 자리에 엉뚱한 시간에 있었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이런 무차별 범죄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지금 현재 분명히 존재하는 위협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류의 범죄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의 존 더글러스가 등장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사 당국은 제2의 존 더글러스 양성을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5년 동안 수천 건의 사건에 시달린 존 더글러스는 과로와 스트레스(그가 제시한 프로파일링이 빗나가면 엉뚱한 결과가 도출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로 쓰러져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며, 가정을 돌보지 못해 이혼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희생을 치루면서도 그는 연쇄살인범 수사를 포기하지 못한다. 개인적인 공명심이나 직업적인 성공만을 위해서라면 결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세상에서 몰아내기 위한 사명감이 있는 자만이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 존 더글러스의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BONUS1: 이 책에 따르면 99.9%의 연쇄살인범은 남자라고 한다. 여자는 분노와 열등감 등의 정신병질적 요인을 안으로 삭여 살해에까지 이르지는 않지만, 남자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과 선천적인 기질의 차이로 살해를 저지른다고 한다.
BONUS2: 강간범들에 대한 거세형벌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연쇄강간범들은 성욕이 아니라 자기 안의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 강간을 저지르기 때문에, 거세를 해도 같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한다.
BONUS3: 거의 모든 연쇄살인범들이 어려서 학대를 당했거나 가정이 매우 복잡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25년 동안 흉악범들을 연구, 조사하면서 좋은 성장 환경, 우애 깊고 서로 도와주는 가정,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 흉악범이 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 가정을 꾸릴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