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 여자 참 독하기도 하네,이다. 주로 여성, 나아가서는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악마성과 잔혹함, 파괴성을 날카로운 칼로 베듯 예리하게 그리는 그녀의 작품들은 쉽게 손이 가는 그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의 작품들을 집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역시 그녀의 완벽한 필력 때문이리라.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은 아이코라는 예쁘게 들리는 이름을 가진 여자이다. 그러나 그녀는 47살의 살찐 중년 여성으로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여성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이런 소설에서 흔히 주인공 여성을 아름답게 그려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의 여지를 깔아두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아이코에게서 일체의 여성적 매력을 제거한다. 오히려 작가는 아이코에게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선물할 뿐이다.

 

창녀촌에서 자란 아이코는 엄마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뭇남성들을 상대하며 피폐한 정신 세계를 가진 창녀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창녀촌이 폐쇄되자, 보육원에 들어갔고, 성장해서 그곳을 나와서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고 살아왔다. 필요한 게 있으면 훔치고,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태워 죽이며, 단순히 기분이 나빠져도 죽인다. 가장 갖고 싶었던 엄마를 가지고 있는 세살 아이는 질투심에 유괴해 버린다.

 

괴물이다. 그동안의 기리노 나쓰오 작품을 통틀어봐도 이런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읽어나가는 동안 아이코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해설을 보면 작가는 '섹스하는 어린 아이'를 그리려다가 앞뒤 가리지 않는 인물로 발전해버렸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아이코는 섹스하는 어린 아이가 되고 싶었다. 섹스를 하면 돈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끌리는 외모'를 가지지 못했고,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는 그동안 보여줬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여전히 펼쳐보인다. 흔히 여성적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것들의 해체 작업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모성애가 아닐까 한다. 그토록 찾고 싶던, 상상했던 마마와의 마지막 대면에서 아이코는 그토록 갈구해왔던 모성애도 사실은 허구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아이코의 어머니는 어머니지만 딸을 증오했고, 증오했고, 증오했다. 아이코의 고통스런 깨달음은, 모성 신화가 깨어지는 걸 목도하는 독자의 고통스런 시선과 일치하며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불안감과 강렬함을 안긴다.

 

대체 기리노 나쓰오는 누구이길래 이런 글을 쓰는가. 예전에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농으로 비슷한 연배의 여성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와 비교한 적이 있다. 미혼의 미야베 미유키가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써도 따뜻한 분위기와 인간적인 결말을 준비해놓는다면, 24살에 결혼해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과 딸 하나를 둔 기리노 나쓰오는 처절하게 극단적이며, 인간과 인간의 교감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이 차이는 아마 결혼의 여부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야베 미유키는 결혼을 하지 않아, 세상이 아직 밝아보이는데, 기리노 나쓰오는 평범한 결혼 생활을 통해 지옥을 본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냥 농담이었는데 웬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경험이며, 그녀의 필력은 이미 일본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코라는 괴물마저 경찰에게 붙잡혀 파멸하지 않을까, 독자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능력은 어지간한 작가는 하기 힘들다. 인간 사회의 비루한 것, 비천한 면들을 뻔뻔스럽게 제시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법도 여전하다. 결국 엄마와 대면하면서, 그동안의 죄에 대해 약간이나마 눈을 뜨게 된 아이코에게 끝까지 구원의 길을 인도하지 않는 작가의 지독함에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비록 그녀의 대표작에 비해 조금 짧은 분량으로 그 힘이 조금 부족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대다수의 평범한 작가들과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역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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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2006-07-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을 읽고싶도록 리뷰를 쓰시네요 님의 서재의 책들을 마구주문하고, 이것도 주문함에 넣습니다.

jedai2000 2006-07-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keeffe 님...감사합니다. 과찬이시지만, 정말 제가 쓰면 사람들이 읽게 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추리소설 좀 많이 읽히게요..ㅋㅋ 기리노 나쓰오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예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