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위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한층 더 대단한 것 같다. 우선 미스터리 대중 작가가 받을 수 있는 상은 전부 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작품 <용은 잠들다>로 일본 미스터리작가 협회상, <화차>가 야마모토 주고로상, <이유>로는 나오키 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의 정점에 올라 있다. 이 외에 자잘한 것(?)도 여러 개가 넘는다. 아마 집에 수상 트로피를 진열해 놓는 전시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로서 평론가나 심사 위원들이 주는 이런 상보다 더 기쁜 것은 일본 유수의 출판 잡지 <다빈치>에서 독자가 사랑하는 여성 작가 투표에서 7년 연속 1위를 한 것일테다. (참고로 작년의 남성 작가 1위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2위가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의 수많은 평론가와 독자들에게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는 행복한 작가가 바로 미야베 미유키인 것이다.

 

인기 작가답게 작품 수도 많은 편인데 귀동냥해서 들은 짧은 지식으로는 대략 3가지의 작품군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그녀의 대표작들이 몰려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 계열이다. 사회적 병리 현상을 범죄의 틀에 담아 그리는 사회 밀착형 미스터리 소설로 보면 되는데 <화차>에서는 카드 문제, <이유>에서는 부동산의 문제를 담고 있다. 두 번째는 아마도 시대소설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소개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일본의 옛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로 따지면 포졸(?)같은 탐정이 활약하는 내용들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판타지 계열이 있는 것 같은데, 본서 <용은 잠들다>나 <크로스 파이어>같은 초능력자를 다룬 이야기도 많이 쓴다고 한다. 워낙 게임광으로도 유명해서 아예 검과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 <이코>를 쓰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니 독자들이 질릴 새가 없는 것이다.

 

<용은 잠들다>는 위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초능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타인의 마음과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사이킥'이라는 능력자들의 이야기이다. 태풍이 부는 어느 날, 신지라는 신비로운 소년을 만난 잡지 기자가 주인공이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신지가 사이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잡지 기자는 소년의 능력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기존의 사고 틀에 묶여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 뒤 기자는 또 한 명의 소년을 알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신지의 사촌형이라 말하고 신지가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이 심했다고 증언한다. 신지가 보여준 능력의 트릭을 조목조목 밝히며 기자를 설득하는 소년. 기자는 그럼 그렇지, 하고 말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신지의 진심어린 고백을 듣고 그의 능력을 조사해보기로 결심한다. 한편 기자는 정체불명의 협박장을 받는 등 두 소년과 관계하기 시작한 뒤부터 여러 가지 사건들이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게 된다.

 

<용은 잠들다>는 공히 작가의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는 <화차>의 1년 전에 쓰여졌다. 서서히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작가의 자신감과 역량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우선 '사이킥'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선택해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초능력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의 것이다. 잘 모르는 것이니만큼 시종일관 집중하며 읽게 된다. 그 외에도 후반부의 유괴 사건에서 보여주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독특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등장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과연 미야베 미유키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보통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작품을 쓸 때, 작가 스스로 자기가 쓰는 초능력자들의 능력에 도취되어 요란한 초능력 경연장이 되기 쉬운데 반해 <용은 잠들다>에서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초능력자도 인간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읽다보면 남들과는 다른, 남들에게는 없는 능력으로 인해 오히려 고통받는 사이킥들의 절절한 슬픔이 아프게 다가온다.  

 

미야베 미유키는 특유의 따뜻함으로 사랑받고 있다. 작품 속에 살인과 범죄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인간을 보는 시각은 따뜻하고 순수하다. 비슷한 연배의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이 칼로 긋는 듯 날카롭고 예리하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봄날 햇살처럼 어딘지 포근하다. 예를 들어, 똑같은 범죄가 등장하는 작품이라도 쓰는 방식에 따라 아다르고 어다른 법이다. 그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렇게 극단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면 우리는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이해하게 되고 어쩔 수 없어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가 잘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그녀 작품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용은 잠들다>도 결국 초능력으로 고통받던 소년이 그 힘으로 옳은 일을 하는 이야기다. 요즘 세상 인심에 비추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할지 몰라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내용이 아닌가? 인간에 대한 숭고한 애정을 간직한 주인공이 번민 끝에 결국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초능력을 누구나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용'으로 묘사하고 있다. 용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의 용은 잠들어 있고, 어떤 이의 용은 활발히 깨어 있다. 용은 달리 말하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잊고 사는 옳은 일에 대한 용기와 신념일 수도 있다. 작가는 마음 속의 용을 깨워 불의와 맞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속의 용(초능력)으로 기껏 스푼이나 구부려서야 되겠는가. 누구나 갖고 있는 작지만 큰 힘으로 옳은 일을 행할 때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아름다워질것이라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순진하다고? 그러나 그것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메시지이고, 진심을 담고 있음에 우리는 작가의 호소에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몸 안에 용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어마어마한 힘을 숨긴, 불가사의한 모습의 잠자는 용을. 그리고 한 번 그 용이 깨어나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일밖에 없다. 부디, 부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무서운 재앙이 내리는 일이 없기를-. 내 안에 있는 용이 부디 나를 지켜주기를-. 오로지 그것만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5-1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다니 놀라워요~

jedai2000 2006-05-1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자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 조금 일찍 읽었네요. 만두님께도 곧 배송이 될 겁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