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트리스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댄 브라운은 현재 세계 출판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2천만 부를 팔아치운 <다빈치 코드>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져 곧 개봉될 예정이고, 신작으로 알려진 <솔로몬의 열쇠>도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는 작가의 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 순서대로만 보자면 <디지털 포트리스>가 데뷔작이다. 참고로 <디지털 포트리스>의 다음 작품이 랭던 시리즈 제1작인 <천사와 악마>, 그 다음이 <디셉션 포인트>이다. <다빈치 코드>가 워낙 많은 사랑을 받자 전작들이 국내에는 후속 출간된 양상인데,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댄 브라운의 초기작들이 나중에 자국에서 출간되는 재미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보부라고 할 수 있는 NSA에서는 국가 안보와 테러 방지를 위해 모든 이메일 암호를 해킹할 수 있는 트랜슬터라는 슈퍼 컴퓨터를 만든다. 암호를 해독하는 데는 버고프스키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되는데 사실 이게 단순 무식한 방법이다. 버고프스키 원칙은 모든 암호는 원칙적으로 해독 가능하다는 것인데, 모든 가능한 조합을 적용하다 보면 암호는 언젠가는 풀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숫자 4개로 이루어진 암호 '7392'가 있다고 하자. 0000부터 9999까지 대입하다 보면 '7392'가 되는 순간에 암호는 풀릴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이 암호를 풀기 어려운 것은 일일이 대입할 시간이 없어서이지 암호가 어려워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 컴퓨터 트랜슬터는 웬만한 암호는 6분 이내로 끝낼 수 있다. 트랜슬터가 있는한 NSA는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암호가 풀린다면 일반 시민들의 정보도 무제한 해킹당할 수 있다. 이 사실에 불만을 품은 천재 컴퓨터 전문가는 트랜슬터를 무너뜨리기 위해 절대 풀리지 않는 암호 '디지털 포트리스'를 만든다. 디지털 포트리스의 작동 원리도 간단하다. 위에서 예를 들은 '7392' 암호를 다시 한 번 보자. 트랜슬터가 '7392'를 맞추는 그 순간, 디지털 포트리스는 회전해 암호를 바꾼다. 이렇게 되면 트랜슬터는 절대로 암호를 풀 수 없게 된다. 결국 영원히 풀리지 않는 철옹성의 요새가 되는 셈이다. 만약 테러리스트나 나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디지털 포트리스를 이용해 이메일을 보내면 NSA는 막을 수 없게 된다. 어떤 암호도 해독할 수 있는 트랜슬터와 절대 풀리지 않는 암호인 디지털 포트리스의 창과 방패 대결이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이다.

 

댄 브라운의 처녀작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거의 없다. 일종의 정보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본인 같은 컴맹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기 쉽게 쓰여져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무엇보다 한 편의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속도가 빠르고 박진감이 넘친다. 안전벨트를 매고 보시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을 정도다. 작가 댄 브라운의 강점은 하이 컨셉을 잘 잡는다는 것인데, 소재만 갖고도 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역량이 돋보인다. <디지털 포트리스>의 트랜슬터와 디지털 포트리스, <천사와 악마>의 일루미나티와 갈릴레오, <다빈치 코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예수 등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능력은 타고났다고 본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창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뿐. <디지털 포트리스>의 주인공들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험을 하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위기를 겪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탈출을 한다. 그것은 다른 스릴러 영화나 소설의 익숙한 컨벤션이나 클리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별로 독창적이지는 못하다. 헐리웃 스타일의 자동차 추격전, 몇 번의 뒤집기와 초를 다투는 시간 싸움 등 한 마디로 뻔하다. 물론 뻔한데도 불구하고 시선을 제압하는 능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댄 브라운은 심지어 본인의 작품들도 복제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포트리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들은 거의 국화빵 틀에서 만들어진듯 비슷하며, 그들을 뒤쫓는 킬러의 존재나 이국적인 곳에서의 모험담 등이 거의 유사하다. 몇 번은 통하겠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언젠가는 독자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포트리스>는 작가 댄 브라운의 데뷔작이지만 무척 빠르게 읽히고 정신없이 재미있다. 뭐라뭐라 욕을 들어도 결국 읽을 수 밖에 없는 작가다. 최근 국내 출간된 <디셉션 포인트>나 앞으로 나올 <솔로몬의 열쇠>도 아마 나오자마자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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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5-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읽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빠르게 읽히고 정신없이 재미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페일레스 2006-05-0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은 차라리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빈치 코드도 읽다가 집어던져버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ㅅ-;

jedai2000 2006-05-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가볍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더 없죠. 어느날 정말 무료하고 답답한 날, 함 읽어보세요. 시간이 금방 갈 거예요. 재미도 있구요. ^^;;

페일레스님...워낙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듯한 소설이죠. 너무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볼만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부족한 작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