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06.봄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한 3년전쯤 추리소설을 다시 접하고 나서 줄기차게 그쪽만 파고 들었다. 나름대로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반성스러운 부분이 국내 작품들을 별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챙겨볼 예정이다. 읽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읽을만한 작품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계간 미스터리>같은 미스터리 전문 잡지는 일단 반갑다. 우리나라 추리작가들의 단편도 볼 수 있고, 다양한 기사들로 미스터리에 대한 견문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니 말이다. 물론 솔직히 아직은 결제를 하기까지 약간은 망설이게 만드는 완성도에 머물고 있지만, 판매 부수가 늘어나고 내용을 더 알차게 꾸미려 노력한다면 미국의 <앨러리 퀸스 미스터리 매거진>이나 일본의 <파우스트>같은 수준높은 미스터리 전문지로 탈바꿈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잖은가.

 

봄호의 특집1은 경찰 소설의 아버지 에드 맥베인을 다루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화요추리클럽>을 운영하고 계시는 장경현 님과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박세진 님, 전두찬 님이 기고하셨다. 작년에 타계한 에드 맥베인은 50편 남짓한 많은 작품 속에서 가상의 도시 이솔라의 경찰, 87분서를 그렸다. 그는 87분서의 형사들의 활약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 경찰 소설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얻었다. 국내에도 10권 정도 출간이 되었는데, 시중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는 건 2권에 불과하다. 장경현 님은 이솔라를 휩싸고 있는 분노와 증오의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상당히 전문적이고 비평적인 느낌의 글로 87분서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박세진 님의 글은 87분서와 에드 맥베인에 대한 이런저런 소사와 흥미거리를 소개하며, 전두찬 님은 87분서는 어떻게 경찰 소설의 아이콘이 되었는가란 주제로 글을 진행하고 있다. 박세진 님과 전두찬 님의 글은 재미있었지만, 이솔라의 인종 문제를 언급하는 부분 등 겹치는 내용이 간혹 보여 편집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이 잡지는 기고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것 같다. 그로 인해 기고자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는 장점은 있지만, 같은 내용이 중언부언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부격인 김성종 선생님의 인터뷰도 있다. 그동안 스티븐 킹, 딘 쿤츠 등의 외국 작가와 가상 인터뷰를 실었었는데, 재미있지만 솔직히 이 대가들을 직접 만나서 당당하게 인터뷰를 해내는 현실이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므로 씁쓸한 느낌도 있었다. 차라리 국내 추리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가상의 인터뷰가 아닌 작가의 육성을 듣는 재미도 있고, 또 선배 추리작가들의 창작의 비결을 듣고 한수 배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반면교사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김성종 선생님의 신작 이야기와 새로 창간할 미스터리 잡지 이야기, 외국 추리작가협회와의 연계 등 흥미로운 포부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꼭 바라는 대로 이루시기 바란다.

 

특집2는 아마추어 추리소설의 투고 모음이다. 이 특집은 상당히 재미있는데, 완성된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들의 약간은 설익은 느낌이 나는 작품들에서 나름대로의 신선함과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로 님의 <치명적인 쳇바퀴>는 에드 맥베인 특집이 있는 호답게 경찰 소설이다. 목포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쭉 읽히는 맛은 있는 작품이고, 무엇보다 걸진 사투리가 일품이다. 내내 미소를 띄우며 읽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나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는 아이디어가 부족했고,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문장도 좀 더 갈고 다듬어야 할 것 같다. 김주동 님의 <별장>은 문장력이 좋았지만, 중요한 단서인 손수건을 둘러싼 공방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솔직히 그 손수건이 뭐 어쨌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김현아 님의 <4층 B열람실, 좌석번호 253번>은 소재가 아주 실감나고 재미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흔히 일어나는 물품 절도와 몰래 카메라라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대학생이라면 크게 공감할 소재를 잘 선택한 것은 돋보인다. 그러나 소재가 나쁘지 않은데 비해 인간을 잘 그렸나 하면 그건 아니다. 절도범 여자가 목표 대상의 자리에 앉아 도둑질을 하고 있을 때, 변태남에게 몰래 카메라를 당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결국 둘 다 잡히는데, 이건 납득할 수 없다. 과연 그 상황에서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도둑이 있을까? 작가도 여기가 좀 걸렸는지 뒷부분에서 그 도둑녀가 참으로 당찬 여자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변명에 불과하다. 추리소설은 그렇잖아도 고도의 인공성으로 인해 현실감이 부족하게 되기 싶다. 사건의 인공성은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속에서 숨쉬는 인간의 행동만은 공감가게 그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추리'는 될 수 있어도, 좋은 '소설'은 될 수 없다. 이민재 님의 <미녀와 야수>는 초반 플롯이 흥미로운데 비해 결국 신파적인 사랑 이야기로 맺음을 하고 있다. 협박자에게 한 두번의 반전을 더 주었으면 어땠을가 싶다.

 

그외에 사노 요의 단편 추리소설을 각색한 만화 <심리살인>은 그전에 읽어본 작품인데 소름끼치는 반전이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그동안 실었던 만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기성 작가로 김차애 님의 <다정다감>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조금 짤린 것 같다. 편집상의 실수로 보인다. 운노 쥬자라는 옛날 일본 미스터리 작가의 <파충관 사건>은 옛날 작품답게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예전 손맛을 느낄 수 있다. 권일영 님의 <주마간산 일본 미스터리 문학사>는 분량이 조금 더 많았어도 좋을 뻔 했다. 1950년대 이전의 일본 미스터리사를 인물 중심으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이런 기획은 아예 10년 단위로 매호 연재하고, 나중에 따로 책으로 묶어서 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서해 페리 호 침몰사건>은 그냥 신문 기사 발췌에 그친 것 같고, <연쇄살인자 유영철의 성장배경과 정신상태>는 꽤 재미있다. 사회의 격차가 커지니 못 가진 자의 대상을 가리지 않는 증오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증오 범죄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여성에 의한 스토킹 범죄의 유형>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성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웠고, 이런 내용으로 추리소설을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다른 호보다 읽을거리가 많았다. 특히 아마추어 추리소설 특집이 상당히 좋은 기획이었던 것 같다. 기성 작가들보다 확실히 떨어지지만 그래도 추리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은 살아 숨쉬는 아마추어 작가분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이런저런 재미를 많이 느꼈다.  그분들께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계간 미스터리>를 만드시는 분들도 항상 두근거리는 초심을 가지고 더욱 훌륭한 미스터리 전문지를 만들어내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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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7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4-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_-;;; 빨리 수정해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6-04-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같은 걸 느끼셨군요^^

jedai2000 2006-04-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쉬움도 만족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번 겨울호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