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오츠 이치는 젊은 작가입니다. 1978년생으로 저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네요. 열일곱 살 때, 잡지의 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고 합니다. 상당히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2002년작 GOTH가 대표작입니다. GOTH라는 작품은 호러소설의 분위기와 본격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단편집이라는데 평이 대단히 좋아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국내에 오츠 이치는 <너밖에 들리지 않아>와 <쓸쓸함의 주파수>라는 두 권의 단편집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쓸쓸함의 주파수>에는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작품인 <미래예보>에서는 미래가 보이는 소년이 자신이 본 미래를 노트에 적습니다. 마치 유명한 일본 만화 <데스노트>와 같은 설정이죠. 하지만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작품인 <손을 잡은 도둑>은 깔끔한 소극입니다. 벽에 구멍을 뚫고 도둑질을 하려던 남자, 뚫어놓은 벽에 손을 집어넣다 우연히 한 여자의 손을 잡아 버립니다. 달빛이 아름다운 밤, 벽 사이로 도둑과 손을 맞잡은 여자의 기막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세 번째 이야기인 <필름 속 소녀>는 호러풍의 단편입니다. 소심한 영화 동아리 여대생이 우연히 발견한 필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인 <잃어버린 이야기>는 교통사고로 오른팔의 감각만이 살아있는 남자와 아내와의 소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부 특색이 있는 단편들로 오츠 이치의 다채로운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 후기를 보니, 그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업 작가가 될까 아니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될까 망설이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대학 이전부터 글을 썼지만 유명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글만으론 생계가 곤란합니다. 하지만 기계 부속품 같은 샐러리맨 생활은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죠. 이런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잡지사 편집자가 애절한 이야기 단편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쓴 게 <미래예보>입니다. 이 작품이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무런 꿈과 비전도 없는 주인공의 출구없는 답답한 생활에서 오츠 이치의 고민이 많이 투영된 듯 합니다. 젊다는 것은 가능성도 많은 법이지만, 그만큼 미래에 대한 암담함에 고민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해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미래예보>의 주인공과 오츠 이치에게 괜시리 친근감이 듭니다. 오츠 이치는 딱 저의 세대 작가이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더 가깝게 느껴지네요.

 

<필름 속 소녀>는 같은 잡지의 무서운 이야기 특집에 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래예보>와 <필름 속 소녀>는 의뢰를 받아 아이디어를 짜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합니다. 이 작가는 근본적으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써야지 마음 편하게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나 봅니다. 그래서 우연히 떠오른 착상으로 신나게 써내려간 <손을 잡은 도둑>은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후기에 적었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이 작품이 가장 근사한 단편이 된 것 같습니다. 달밤에 양손을 마주잡은 도둑과 젊은 여자라는 상황도 절묘하고, 묘하게 웃음을 쿡쿡 나게 합니다. 잔잔한 마무리도 인상적인 좋은 단편입니다.

 

하나의 단편집에서도 각각 다른 장르로 재미를 주는 오츠 이치의 재능을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묘하게 매력이 있는 작가로, 쉬운 문장을 구사하며 머리 속에서 바로 그림이 그려지는 회화적인 이미지 표현에 능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기회가 닿으면 술 한 잔 하고 싶은 친구같은 느낌이 드는 작가였습니다. 현재는 GOTH로 받은 인세를 탕진하며 쓰고 싶은 글들을 마음껏 쓰고 있다고 합니다. 꿈을 이룬 것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네요. 한창 기세가 올랐을 때 신작을 쏟아내지 않느냐고 주위에서는 면박을 주지만 자신은 지금이 행복하답니다. 작가 소개에 보니 취미는 한 밤중에 조깅하기랍니다. 왜 밤이냐 하면 낮에는 창피하니까. 그런데 밤에도 조깅하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몰래 나무 뒤에 숨어서 발각되지 않기를 기도한다네요. 자기 작품만큼 섬세하고 감수성이 독특한 사람 같네요. 이제부터 저도 이 귀여운 작가의 팬이 되렵니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복의랑데뷰 2006-03-1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시다가 전업작가로? ㅋㅋ

jedai2000 2006-03-1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오츠 이치와 제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츠는 GOTH로 대박을 터트려서 이제 고민이 필요없는 위치가 됐죠.
저와 오츠가 가장 다른 게 재능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흑흑.
저도 대박을 쳐서 그 인세로 평생 쓰고 싶은 글이나 쓰면서 소일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