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크라임스
조지프 파인더 지음, 이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유명한 미국 스릴러 작가 조지프 파인더의 98년작 <하이 크라임스>를 읽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애슐러 저드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2002년에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또다른 유명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키스 더 걸스>에서도 콤비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 없는 게 유감이지만, 뭐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니까요.

 

성공한 하버드 법대 교수 클레어는 투자 회사의 CEO인 남편 톰, 귀여운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을 정도의 행복한 날들은 어느날 무참히 산산조각나고 맙니다. 남편 톰이 경찰에 살인죄로 체포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만해도 충격적인데 드러난 남편의 과거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전직 특수부대출신인 남편이 남미에서 작전 수행 중 사악한 광기를 드러내며 민간인 87명을 사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모든 사건이 조작되었으며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라고 항변합니다.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클레어는 남편을 변호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남편 톰이 받아야하는건 다름아닌 군사재판. 상식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권위적인 군사재판에서 민간인이, 그것도 군대에서 약자나 다름없는 여성 변호사인 클레어 교수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법정소설에 가깝습니다. 중반부터 끝날 때까지 군사법정 아래에서의 클레어와 군 검찰관 사이의 공방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군 기관에 맞서 클레어는 군 출신의 유능한 흑인 변호사 그라임스, 사립 탐정 데브르, 신참내기 변호사 엠브리와 한 팀을 이룹니다. 가끔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무고한 자를 구한다는 신념으로 증거를 모으고, 온갖 불리한 조건에서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그들의 모습이 멋지게 묘사됩니다. 클레어 측에서 군 검찰관이 들고나오는 증거나 증인들을 면밀한 세부조사로 무너뜨리면, 더 강한 증인이 나옵니다. 클레어 측은 다시 곤란에 빠지고 또 머리를 짜내 허점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구도가 계속 반복되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일단 한 번 잡으면 반드시 끝을 보실거라 확신합니다. 페이지가 쉴새없이 넘어가는 소설을 영어로는'페이지 터너page-turner'라고 한다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최고의 페이지 터너입니다. 

 

또한 조지프 파인더는 정통 스릴러 작가답게 스릴과 서스펜스 창조에 능합니다. 일개 민간인들이 정부의 비밀 은폐 공작을 파고들자 그들은 실력 행사로 응수합니다. 군인이야 사람 죽이는 게 하는 일인데 민간인들 몇 명 제거하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시종 계란으로 바위치는 상황이므로, 벼랑 끝까지 몰리는 주인공들(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립니다.)의 처지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마침내 손톱을 쥐어뜯게 만드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1958년생인 작가 조지프 파인더는 약력을 읽어보니 정부기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CIA나 군대의 첩보부 등의 일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하더군요. 이 작품에도 과거에 있었던 학살을 미끼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미국내 유력기관들의 모습이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한 번 잡고는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지만 결말에서는 살짝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지나친 반전강박증인데요. 요즘 나오는 미국 스릴러 소설에서는 막판뒤집기를 굉장히 선호해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반전이 등장합니다. 천편일률적인 반전이 작품마다 등장하니 오히려 시작부터 누가 범인인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뻔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사건이 끝나고도 두 번의 반전이 등장하는데, 한 번으로도 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용기있는 스릴러 작가가 반전이 없는 게 오히려 반전인 작품을 그려봤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은 재생지 비슷한 지질에 미국의 페이퍼백 형태를 흉내내서 만든 것 같습니다. 분량에 비해 가격도 싸고, 인터넷 서점의 할인률까지 적용받으면 제법 페이퍼백 기분이 납니다. 미국의 페이퍼백 스릴러 시장을 흉내낸 이런 시도도 괜찮은 것 같은데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 ★★★★

 


p.s/ 본문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이 있는데 절대로 먼저 읽지 마세요. 중요한 스포일러 하나가 작가의 입을 통해 등장합니다. 저도 당했습니다. 본문이 끝나고 작가의 말을 읽는게 순서일텐데 왜 편집을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네요.

 

 




 
영화 <하이 크라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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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이거 선물 받고 여직도 못 읽었네요 ㅠ.ㅠ

jedai2000 2006-03-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3월달에는 꼭 읽어보세요. ^^;;

한솔로 2006-03-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푸싱이군요. 우선 장바구니로ㅎㅎ

jedai2000 2006-03-0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식 군대(?)를 다녀오지 못해서 군대 내부의 질서를 잘 모릅니다만, 한솔로님께서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솔로 2006-03-0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간만 길었지 허투루 군생활을 해서리...

panda78 2006-03-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본 것이 안타깝네요. ^^;

jedai2000 2006-03-0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그러셨군요..^^;; 그래도 군대 문화에 관한 내용이 많아 재미있으실 듯 합니다.

판다78님...아쉽네요. 꽤 재미있는 책인데. 영화보다는 소설이 훨씬 낫다는 게 중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