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살인사건 밀리언셀러 클럽 9
딕 프랜시스 지음, 이순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경마장 살인사건>은 경마 미스터리의 거장 딕 프랜시스의 처녀작이라고 합니다. 데뷔작답지 않은 완숙한 기량이 눈에 띄고, 또 딕 프랜시스 작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다 들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첫 작품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데뷔한 작가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저는 여태까지 그 사람 책 3권을 읽어 봤는데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장애물 경마 대회 도중 강력한 우승후보 빌이 갑작스런 사고로 낙마를 하고 사망을 합니다. 빌을 뒤따르며 달리던 라이벌이자 친구, 앨런 요크는 친구가 말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언가를 본 것 같습니다. 경주가 끝나고 친구가 사망한 현장으로 간 앨런은 그곳에서 장애물 위에 둘러쳐진 철사를 발견합니다. 빌은 무사히 장애물을 넘었지만 그 위에 쳐 있던 철사에 걸려 넘어져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앨런은 친구의 죽음을 둘러 싼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여느 딕 프랜시스 작품과 같이 무수한 위기가 그에게 다가올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작가 딕 프랜시스는 그의 재미있는 작품 만큼이나 흥미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실제 기수였던 사람으로 350번 이상 우승하고, 챔피언 기수로 두 번 선정되는 등 그쪽으로도 명성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으로 은퇴하고 경험을 살려 경마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로 일했답니다. 그러다 생활고에 못 이겨 소설을 썼는데 그게 바로 <경마장 살인사건 Dead cert>입니다. 그 뒤 39편의 경마 미스터리를 쓰고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생존해 계시는데, 금슬이 굉장히 좋았던 아내가 2000년 사망하고 나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의 작품의 여성 캐릭터 창조에 도움을 주기고 하고, 리서치를 돕기도 하는 등 아내 이상의 파트너, 동반자였던 모양입니다.



작가가 여러 번의 치명적인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재기한 것처럼 그가 묘사하는 인물들도 비슷합니다. 그의 주인공들은 시리즈 캐릭터가 거의 없이 매 편 독자적인 인물이지만 사실 모두 같은 성격입니다. 전형적인 신사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육체적 완력과 행동력, 결단력, 지성 등을 겸비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두뇌와 근육을 이용해 위기를 헤쳐 나갑니다. 또 작가가 평생 아내만 사랑했던 것처럼 작품 속의 주인공들도 한 여성만을 깊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맺어지죠. 한 마디로 이상은 높게, 사랑은 뜨겁게, 열정은 가슴 깊이 묻고 사는 싸나이 중의 싸나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뭐 이런 인물들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겠고, 질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니 소설에서라도 실컷 봐두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사실 딕 프랜시스 작품은 일종의 모험소설, 내지는 첩보소설의 분위기가 강하게 납니다. 비밀을 간직한 조직에 용감한 주인공이 잠입해 정보를 모으고, 그러다 치명적인 위기에 빠지면 멋지게 탈출해 진상을 밝혀낸다는 게 꼭 그렇죠. 더구나 그 와중에 아름다운 여성과의 로맨스도 전개되니까요. 매 작품마다 이런 구조로 약간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나서 손이 잘 가는 작가는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또 그렇게 몰입이 잘되니 대단한 작가예요.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대동소이하다고 해서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작품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으니까요.



<경마장 살인사건>은 세 번째 작품인 <흥분 For Kicks>만큼 흥분의 도가니탕을 연출하지는 못하지만, 후반부 말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의 긴박감은 대단합니다. 딕 프랜시스의 작품은 모두 재미있습니다. 추천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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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01-2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히 말하는 기본은 하는 작가인듯합니다. 게다가 워낙 필력이 좋으시니 ^^

jedai2000 2006-01-2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 기본의 수준도 대단히 높지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흥분>같은 작품을 한 권만 써도 대단한데 39권을 쓰다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