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바닷가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두 형사.

(문체 비교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 지명 등 고유명사는 전부 허구입니다.)

 

1. 히가시노 게이고

 

 

  대중 문학계열에서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나오키 상에 6회 노미네이트된 현대 일본에서 가장 손꼽히는 엔터테이너 작가. 저서로 60여편의 소설들이 있으며 작품마다 다양한 플롯과 스토리텔링으로 늘 신선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문체 스타일은 날렵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이런저런 부연설명이 없는 만큼 그의 문체는 약간 심심하다는 평도 받지만 그만큼 빠르고 집중력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

 

 

 세이토 서에 시체가 발견됐다는 전화가 온 것은 오후 2시였다. 세이토 서는 조용한 어촌 마을인 세이토 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 워낙 작은 마을이라 이렇다 할 사건이 일년에 한 두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여름 관광철에 관광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 등이 그나마 사건 다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 명령을 받은 다카기 형사와 모리 형사는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향하는 내내 다카기 형사는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아직 젊은 모리 형사는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몸매를 보며 점수를 매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카기 형사는 일곱살 때, 부모와 함께 오카나와 바닷가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파도에 떠밀려 온 익사체를 보고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그 이후 다카키 형사는 바다를 무서워했고, 바다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인 관계로 순환 근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인 모래사장에 도착한 다키기 형사와 모리 형사는 몰려든 사람들을 밀어내고 시체에게 다가갔다. 시체는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었는데, 아마도 파도에 모래가 씻겨 나가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시체는 많은 부분이 썩어 흉측해 보였다.

 

 

2. 교고쿠 나츠히코

 

 

   1963년생. <항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그는 음양사 추젠지 아키히코가 등장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교고쿠 현상'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했으며, 1,000페이지를 예사로 뛰어넘는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 작품들을 다수 출간했다. 문체는 그의 기묘한 작품 만큼이나 독특해, 다소 오버하는 듯한 감탄과 난해한 현학 취미로 가득하다. 읽는 동안 '교고쿠 월드'라는 별세계를 여행하게끔 만들어주는, 낯선 독서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체이다.

 

그해 여름, 나와 동료인 모리 형사는 바다로 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아아,

시체가 아닌가.

저 뻥뚫어진 두 눈...

아니다.

눈이 있었던 자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두 눈이 있었던 자리는 이미 검은 허공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잠깐...

검은 허공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이 있다.

아아, 무언가 꿈틀대고 있다.

꿈틀대는 것은 이윽고 서서히 기어나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디 하얀, 구더기가 아닌가.

시체를 조사하러 온 우리를 맞으러 나온 것일까.

그 기괴한 모습에 나는 추워졌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아, 춥다. 정말 춥다.

 

 

3. 다카무라 카오루

 

 

  평범한 직장 여성이었지만, 취미로 쓴 소설들로 일약 유명해져 현재는 일본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마크스의 산>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더 이상 미스터리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미스터리 영역 바깥에서 다양한 소설들을 쓰고 있다. 문체는 기본적으로 꼼꼼을 넘어, 집요할 정도의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한다. 질려버릴 정도의 극단적인 사실주의는 그녀가 쓰는 깊이있는 작품 세계와 잘 어울린다.

 

 세이토 시는 도쿄에서 남동쪽으로 6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총면적 52만평방미터에 불과한 작은 시였다. 세이토 시는 태평양에 면하고 있어, 시민들은 보통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세이토 해의 총수심은 50m, 살고 있는 어종은 130여종으로 주로 갈치가 많이 잡힌다. 봄부터 가을까지 세이토의 명물인 10마력 엔진 통통배를 타고 갈치잡이에 나서는 굳센 어부들의 모습이 바로 세이토를 상징하는 얼굴이다. 세이토 시는 지도를 보면 아무 특징 없는 원형이다. 중앙의 세이토 시청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관청 및 건물들이 퍼져나간 계획 도시인데, 1965년 도쿄 시의 인구 과포화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점 육성된 도시다. 세이토 시의 서쪽이 바로 세이토 해라고 불리우는 바닷가이다. 

세이토 시청에서 두 블럭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이토 서에 119번으로 긴급 신고가 걸려온 것은 6월 17일 14시였다. 오호츠크 해 연안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만나 여름 한시적으로 집중적으로 호우가 쏟아지는 장마가 시작될 즈음이라 날씨는 흐렸고, 무더웠다. 신고 전화는 바닷가에서 시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19세의 마쓰이 키요시로 집단 이지메 때문에 학교를 땡땡이치고 바닷가를 거닐다 시체를 목격했다고 한다. 세이토 서, 연락담당관은 즉시 살인과 2급 형사 다카기와 모리를 호출했다. 출동 명령을 받은 다카기와 모리는 다카기의 1991년식 카로라에 탔다. 카로라는 연비가 좋고, 효율적이라 다카기는 낡은 차임에도 불구하고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다카기와 모리는 현장인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시체는 석영이 60%함유된 모래구덩이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시체의 드러난 상반신은 대표적인 갈조류 식물인 미역으로 휘감겨 있어 마치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뻥 뚫린 눈에서는 금파리의 유충인 구더기가 스물스물 기어나와 그 통통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4. 아카가와 지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로 추리소설의 인기를 범국가적으로 향상시키는데 상당 부분 일조한 바 있다.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로서는 늘 고소득자 랭킹의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의 장가는 바로 유머 미스터리. 얼룩 고양이 홈즈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얼룩고양이 홈즈'시리즈가 특히 유명하다. 작품수도 엄청 많고, 인기도 많은 행복한 작가. 문체는 유쾌,상쾌,통쾌하지만 유치한 면도 많다. 감각적인 유머와 재치를 담고 있는 문체라 생각된다.

 

 "형님, 오늘은 퇴근후에 맥주 한 잔 하죠?"

"누가 내는데?"

"저번에도 내가 샀잖아요. 이번엔 형님이 좀 내보쇼."

"이봐. 모리. 나는 식구가 11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란 말일세."

"또, 그 소리.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낼게요."

오늘도 다카기 형사의 승리다. 늘 맥주값을 두고 다투지만 다카기의 11명 대가족 이야기에는 언제나 모리가 손을 들고 만다. 그러나 모리가 모르고 있는 건, 다카기의 11명 대가족의 정체는 어느 집에나 있는 바퀴벌레라는 것이다.

오후 2시경 전화가 걸려 왔다.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출동한 다키기와 모리.

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시체를 보았다.

"형님, 저 시체 좀 보쇼."

"음...썩어서 뼈가 보이는군."

"저거 보니까 뼈 내장탕 먹고 싶지 않으세요."

"원, 녀석 같으니라고. 시체 앞에서 진지하지 못하게스리. 선지도 추가해서 먹자구."

"자, 이걸 어쩌죠?"

"먼저 시체를 완전히 꺼내 보자고."

모리는 시체를 모래구덩이에서 서서히 빼냈다. 시체의 눈에서는 구더기가 기어나왔다.

"요놈, 우리가 반가운가 봐요. 인사하러 나오는데요. 하하."

"구더기한테 인사 받아서 좋겠네."

모리는 시체를 완전히 빼냈다. 모리는 시체를 안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시체의 두 손을 잡고 댄스를 춘다.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워보시죠." 하면서..

"야! 모리, 너 미쳤어!"

다카기가 벼락같이 고함을 친다.

"예?"

"스탭이 그게 아니잖아. 슬로우슬로우 퀵퀵이야."

"아항!"

격렬하게 춤을 추다보니 시체의 목뼈가 부러졌다.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리는 시체의 목.

"헉. 어쩌죠? 시체를 훼손한 걸 알면 문책 당할텐데요."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다시 파묻어. 시체 발견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지 뭐. 전화는 장난 전화였고."

"역시 형님이셔!"

"그보다 아까 맥주는 유효한거지?"

"그럼요!!!"

다카기와 모리, 두 사람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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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1-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습니다^^ My best는 다카무라 카오루.

jedai2000 2006-01-10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 님. 감사합니다..^^;; 속편도 써야겠는걸요. 다카무라 카오루는 정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고베 대지진 이후에 사람이 죽는 글은 더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네요..T.T 현재는 고다 형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추리는 아닌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들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페일레스 2006-01-10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_^

jedai2000 2006-01-1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페일레스님..^^;; 언급한 작가들 모두 대가들이니 앞으로 이분들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일본 미스터리 많이 사랑해 주세요..^^;;

베쯔 2009-05-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즐겁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제가 왜 다카무라 카오루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를 읽으면서 머리에 쥐가 났었는지, 명쾌하게 이해됩니다.

jedai2000 2009-05-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쯔님...다카무라 가오루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머리에 쥐는 저도 났었답니다. 한 10여마리 뛰어다닌 것 같아요 ^^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오래전 쓴 보람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