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병술년이 시작된 지도 어언 9일이나 지났다. 작년 말, 직장을 그만둔 후로 내리 20일 가까이 거의 매일 새벽에 들어오며 환락에 빠져 지냈다. 작년 한 해에 대한 차분한 정리도 못 하고, 다가오는 올 한 해의 다짐도 못 하며 정신없이 지내온 것 같다.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간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달성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병술년은 개의 해라고 하더라. 개는 가장 가까운 인간의 친구라 그런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개는 좀 귀여워하는 편이다. 모처럼 좋아하는 동물인 개의 해이니 더 설레는 것 같다. 올해는 꼭 원하는 일을 다 이뤄보리라...

 

그나저나 자꾸 개 이야기를 하니까 옛날에 있었던 일 생각이 난다. 때는 97년, 대학교 신입생 때다.

그때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에서 맨날 술만 마셨던 것 같다. 돈도 없어 칼슘이 가득 든 새우깡,오징어 땅콩을 안주삼아 대학교 공원 벤치에서 두꺼비(소주)만 사냥했던 것 같다. 상당히 동물 친화적인 술자리였다..-_-;;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어느 정도의 면적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그마한 숲이 있다. 숲에는 벤치가 여러 곳 놓여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물론 나무가 대부분 소나무라 술 마시다 보면 송충이가 후두둑 떨어지곤 하기도...어떤 선배는 후드티 모자에 송충이가 떨어진 걸 모르고 집에 갔다가 그것을 발견하곤 냉큼 죽이려 하다가 문득 송충이에 애정을 느껴 열심히 길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믿지 마라...

 

여튼 새벽 4시경, 친구K와 J,또다른 J와 함께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다. 사방은 어둡고 몇 개의 가로등만이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 K가 근처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더니 말을 했다.

"야, 저기 봐라. 저기 강아지 있다."

 

우리는 그 친구가 가르키는 곳을 봤는데, 거기엔 검은 형체의 뭔가가 있었다. 내가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 강아지 맞아?"

친구 K는 동물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녀석이라 예전에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을 기른 적이 있었다. 

"내가 동물 박사잖아. 저기 보라고, 꼬리를 말고 머리를 두 앞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있잖아. 저거 강아지가 잘 때 늘 저 포즈로 자는거야."

일동.

"그렇구나.."

 

자칭 동물 박사라는데 누가 이견을 달 수 있으랴...그런데 검은 형체는 날렵하게 다가오더니 준엄하게 한마디 했다.

"야옹~ 야아옹!"

 

그렇다.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받는 순간이 다가오자 직접 입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고양이의 증명'이라 부르자...

 

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 개의 해, 병술년 최고로 보내시기 바라요~!

(이 이야기에 적당한 교훈이나 감동을 주기 힘들자 뜬금없는 마무리로 맺는 저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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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0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요~

jedai2000 2006-01-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