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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ㅣ 메피스토(Mephisto)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주로 일본과 미국의 비교적 건전한(?) 추리소설만 읽었더니, 좀 쎈 게 땡기더라구요.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잔인하게 난도질 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요..-_-;; <버드맨>이 상당히 쎈 작품이라 해서 그것을 잡았습니다.
<버드맨>은 기대했던 대로 굉장히 잔혹하고 엽기적인 스릴러였습니다. 5명의 창녀 시체가 땅에 반쯤 파묻힌 채 발견됩니다. 시체들은 강간당한 채, 온통 상처투성이입니다. 또한 그녀들 가슴 속의 지방이 빼내어진 후 봉합되어 있습니다. 지방을 적출하고, 봉합한 솜씨로 봐서 범인은 의학에 지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녀들 흉곽 안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가 있었다는 겁니다. 새들은 살아 있는 채 범인에 의해 넣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소개해도 책을 읽기 꺼리실 분들이 꽤 많을 것 같네요.^^;; 이 사건을 수사하는 에이엠아이피(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알파벳으로 표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_-;;)의 잭 캐프리 형사는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 스털링처럼 어린 날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형이 옆집 사는 사이코에게 납치,살해된 겁니다. 그런데 옆집 사이코가 그랬다는 심증만 있을 뿐이지요.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캐프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 살인마 '버드맨'과 대결하는 내용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이 끔찍한 작품을 쓴 영국 작가 모 헤이더(왼쪽 사진)의 약력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학교는 15살에 작파하고 술집 여급, 경호원, 일본 도쿄의 바에서 호스티스 노릇도 했답니다. 옆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상당한 미모의 소유지지만 주로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한 특이한 작가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호스티스 생활을 하던 중 동료가 잔인하게 구타 및 강간을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성폭행에 대한 강박 관념에 오랫동안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녀가 쓰는 눈살을 찌푸릴만큼 강간 장면의 세부 묘사가 그토록 정확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녀가 직접 본대로 썼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 봅니다.
책 뒤표지에는 '토마스 해리스와 퍼트리샤 콘웰을 능가하는 범죄 소설의 뉴 웨이브'라고 적혀 있습니다. 퍼트리샤 콘웰처럼 그녀도 법의학 장면을 많이 쓰는데, 콘웰처럼 그쪽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피해가는 식으로 가볍게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는 장점일 수도 있는데 콘웰 책에서는 법의학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어떨 때는 작가의 지식 자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모 헤이더는 콘웰과는 달리 법의학에 대한 세부 설명보다는 빠른 페이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해리스처럼 그녀도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그리는데, 이게 문장력이 안되면 상당히 지저분해보이고 싸구려처럼 보일 수도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다행히 모 헤이더의 문장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라 그 함정을 잘 피해가고 있습니다. 문장력이나 플롯을 짜는 능력이 처녀작 치고는 상당히 원숙해 완성된 작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확실히 신인 작가다운 부족한 면모도 드러내고 있으니...
<약간의 스포일러 경고>
캐프리는 살해된 여자들의 친구인 레베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절정부에서 버드맨은 레베카와 같이 사는 친구인 또 다른 창녀 조니를 납치하죠. 캐프리는 조니가 위험에 빠져있음을 감지하고 증거 조사를 위해 과학수사본부로 향하구요. 그런데 레베카는 전날 조니가 술을 마셨던 술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조니가 버드맨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같이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레베카. 버드맨은 레베카와 조니가 모두 아는 인물로 그 정체를 숨기고 있었죠. 레베카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역시 위험에 빠집니다.
캐프리가 레베카에게 조니가 전날 어디 갔었는지 물은 다음에, 조니가 갔던 그 술집으로 전화 한 통만 걸었어도 버드맨이 누군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잡한 DNA검사는 할 필요도 없었죠. 주인공의 애인이 위기에 빠진다는 영화같은 긴박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개연성을 희생한 겁니다.
신인 작가들은 아직 작품 전체를 보는 눈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럴듯한 몇몇 상황들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춰 작품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쓰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튀어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 작품에선 그런 면이 상당 부분 보입니다. 도무지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게임처럼 순서대로 따라만 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버드맨>은 재미있습니다. 강간과 살인, 해부 장면의 엽기적이고 공포스런 묘사와 숨쉴 틈 없는 빠른 전개, 좋은 문장력이 돋보입니다. 사건이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되는 제2의 사건이라는 국면 전환도 신선하구요. 무엇보다 버드맨이 왜 새를 희생자들 안에 넣었는지 밝혀지는 장면에서의 충격은 굉장합니다.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였죠.
도무지 취향에 맞지 않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만한 현대 범죄 소설의 가작입니다. 모 헤이더는 잭 캐프리 시리즈의 제1작 <버드맨>을 2000년에, 제2작 <The Treatment>를 2002년에 내놓습니다. 제2작은 국내에서는 만나 볼 수 없습니다. 캐프리 시리즈 제2탄을 조속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맺습니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