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자 친구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아내의 여자친구>는 일본에서 꽤 잘 나가는 고이케 마리코라는 여류 작가의 단편집입니다. 총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이케 마리코는 표제작인 <아내의 여자친구>로 일본추리작가협회 단편상을 받았고, <사랑>이라는 작품으로 나오키 상도 수상합니다. 최근에는 연애소설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하는데 서스펜스로 유명한 작가답게 미스터리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애소설을 쓴다고 하네요.

 

<보살같은 여자>는 거부인 병원 원장이지만 교통 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가 된 폭군같은 아버지 밑에서 신음하는 두 딸과 원장의 여동생, 그리고 새 아내가 등장합니다. 폭군 아버지 밑에서 시달리는 여성들간의 연대는 꽤 굳건합니다. 아버지만 없으면 그들은 행복할텐데 말예요. 한편 아버지의 새 아내는 보살같은 미소를 가진 기품있는 여인입니다. 억압받고 고통받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보살같은 여자는 무엇을 할까요? 살해 방식이나 트릭이 약간 본격 미스터리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다소 비현실적이고 우연에 의지하는 트릭입니다.

 

<추락>은 꽤 재미있습니다. 문학 교수와 불륜 관계인 소설가 지망생이 사고로 아파트에서 추락을 합니다. 6개월 전 문학 교수와 소설가 지망생은 밀회를 즐기다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어요. 그 사실을 잘 은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죽고 유서를 남겼다고 하니 문학 교수 발등에 불이 떨어집니다. 혹시 그 사고에 대한 내용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된 그는 유서를 확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유서가 아니고, 끄적거린 습작이었지요. 불안과 공포에 질린 남자의 심리가 그럴싸하게 그려지고, 결국 파국에 이르는 결말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한 번의 반전이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 잡아먹는 여자>는 이 단편집의 백미로 보입니다. 남동생에게 시집온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는 어머니와 같이 들어오는데, 두 모녀는 각각 두 명의 전남편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때마침 그 집의 개(수컷)가 별 이유없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때마침 들려온 소문...두 여자는 남자 잡아먹는 여자로 그녀들과 같이 있으면 남자는 무조건 죽는다는 겁니다. 남동생의 누나는 편집광적으로 모녀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마침내 그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남동생 누나가 느끼는 모녀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절묘하게 그려집니다.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아내의 여자친구>는 평범한 공무원의 평범한 아내에게 성공한 여자친구가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생활은 여자친구가 아내에게 헛된 바람을 불어넣으며 깨집니다. 여자친구에게 아내가 자꾸 물들어가자, 공무원은 여자친구를 죽이려 합니다. 이 단편집은 이런 내용이 많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살의를 느끼는 과정이 세심하게 그려지고, 마침내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의외의 파국과 반전이 그들을 기다린다는 내용들 말입니다.

 

<잘못된 사망장소>는 성공한 방송 진행자와 불륜 관계에 있던 여자가, 그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격분해 우발적으로 그를 죽입니다. 여자는 크게 후회를 하며, 방송 진행자의 원래 부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내가 남편을 죽였고, 곧 자수하겠다며...그런데 방송 진행자 가족은 난리가 났습니다. 방송 진행자의 유언은 자기가 집에서 죽었을 때만 가족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집 바깥에서 죽었을 때는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가족들은 유산을 받기 위해 방송 진행자의 시체를 집으로 가져오려고 한밤의 생쇼(!)를 합니다. 블랙코미디 같은 흐름으로 진행되는데 반전이 좋았던 다른 단편들과는 달리 억지스럽습니다. 이 단편집에서는 가장 별로인 듯 하네요.

 

<종막>은 무명 연극배우가 극단의 스타인 여배우와 불륜을 하고, 그 댓가로 주연 자리를 받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드디어 스타가 됐지만, 스타 여배우는 그를 놔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까지 생겼지만 스타 여배우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폭로하겠다며 협박합니다. 추리소설에서 이런 여자는 반드시 죽어줘야 합니다..^^;; 무명 연극배우는 철저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고 그녀를 죽이러 갑니다...알리바이 해결이 핵심인 작품인데 의외로 알리바이 자체는 부실합니다. 가짜 알리바이가 밝혀지는 장면도 그저 그렇네요. 범인이 실수를 한건데, 그런 실수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설정은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뒷표지 카피에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독 혹은 가시'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단편집을 잘 요약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형사나 킬러, 탐정 등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나 남편 등이 등장해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생리적인 반감, 사소한 오해와 분노 등을 느끼고 그것이 눈덩이처럼 커져 마침내 살의가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다 살의를 느낍니다. 실행에 옮기지 못해서 그렇죠..^^;; 이 단편집은 용감!하게 그것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어떤 파국을 맞는지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전반적으로 수록 작품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전개가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아 꽤 몰입도가 높습니다. 좋은 단편집입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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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2-2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았어요^^

jedai2000 2005-12-2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꽤 재미있더군요. 추리소설 초심자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단편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