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저물어간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날씨도 한결 쌀쌀해진 것 같고, 낙엽은 우수수 잘도 떨어진다. 매주 주말 집에만 있는 것도 싫증이 나 무작정 집을 나섰다. 사실 나는 늘 궁금하다. 다른 분들은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 말이다. 나만 이렇게 심심하고 할 게 없는 건지 다른 분들은 어떤지 알고 싶다.

 

막상 나와도 갈 곳이 없어 극장으로 갔다. 무슨 영화를 볼지 확실히 정하고 간 것도 아니라, 요즘 뭐가 재미있을까 살펴 봤다. <월레스와 그로밋:거대 토끼의 저주> <유령 신부><새드 무비>...차근차근 살펴 보는데, 굉장히 공포스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공포영화 제목 같으면서도 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제목을 가진 영화...<40살까지 못해본 남자> -_-;;;

 

주인공의 처지를 상상만 해도 공포스럽다. 이 영화를 보고 나도 주인공처럼 되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려는 의도에서 봤다. 그저 그런 코미디였다. 아주 재미없지도, 있지도 않은...중년판 <아메리칸 파이>였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비추다.

 

영화를 보고 서점에 들려서 책구경을 했다. 신돈 이야기를 그리는 월탄 박종화 선생의 <다정불심>을 사려 했는데, 없어서 그냥 왔다. 갖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벌이가 시원찮아 답답하다. 언제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책을 살 수 있을까...

 

서점에서 나와 집에 가려는데 웬 남자가 나를 잡았다. 얼굴을 보니 덕이 있고, 어쩌고 하길래 바쁘다고 뿌리치자 오히려 강하게 나온다. 보아하니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성인인 것 같은데, 길거리에서 사람이 말을 걸면 들어줘야지 왜 무시하냐 이거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 상궤를 벗어난 답변에 오히려 죄책감이 드는 것이 아닌가... 백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때부터 더욱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사주를 볼 줄 아는 자기같은 사람이, 지나가던 나에게 안좋은 기운이 보이길래 친절한 뜻에서 가르쳐 주려 하는데 왜 무시하냐 이거다. 너무 화를 내길래 진정시키느라 힘들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난 후 그 사람, 본연의 임무로 들어왔다. 내가 성공의 기운을 타고 났으나 마가 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아프시고, 여인과의 인연도 달성할 수 없으며, 친척 중에 자살하신 분도 나 때문에 했단다..내가 무슨 <오멘>이냐! 안되는 건 다 내 탓이란 말이냐! 

 

그러면서 자기와 5분만 이야기를 해보잔다. '됐거든'하고 그 인간에게서 벗어났다. 얘네들이 전략을 바꿨나 보다. 사람들이 무시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걸로, 순간 당황해서 사과하고 말을 들어주면 본색을 드러내는 식으로...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나 답답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한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 인도에 온통 낙엽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웬지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약 30분쯤 걸어야 하는 짧지 않은 길이지만, 낙엽을 사박사박 밟으며 걷는 것이 운치가 그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적없는 길을 홀로 걸었다. 그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가을과 낙엽을 노래했는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이런 시도 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쓸모없고, 처연한 느낌을 지닌 낙엽을 밟으며 한껏 늦가을의 정취에 빠져 걷고 있는데...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났다. 금방 사라지겠지 했는데 계속 난다.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편에 철책 넘어로 거대한 건물이 있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하수처리장> 이다...-_-;;

 

일요일 밤에 무슨 처리할 하수가 그렇게 많다고...질식할 듯한 살인적인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 냄새는 마치 파리의 하녀, 프랑소와가 걸레빤 물 냄새+ 맨해튼 하수도 냄새+ 안동 김씨 종가 측간에 2백년 동안 쌓인 인분 냄새를 합한 듯한 냄새였다.

 

나는 미친 놈처럼 달리며 냄새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 냄새는 빚쟁이가 빚진 놈을 끈질기게 쫓아오듯 나를 추격했다. 미치는 줄 알았다. 나는 냄새를 털어내려 발버둥치며 미친 넘처럼 댄스를 추워댔다. One Man Tango...

 

간신히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지만 아직도 나는 듯 하다. 어느 늦은 가을 날의 외출은 최악이었다...T.T

 

 



  

 

 

 

 

 

 

 

 

   

 

 

 

 

<사진은 디씨 인사이드- 신돈 갤에서 퍼왔음. 본문 내용과는 1g도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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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11-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들이 전략을 바꾼 모양이네요. 가을 낙엽 밟으며 영화 보러 가고 싶다며 울부짖는 요즘인데, 제다이님의 이 글을 읽어도 여전히 영화 보고 싶고, 낙엽 밟고 싶어요...

아영엄마 2005-11-0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제사를 지내야 조상님 덕을 본다...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이 길에 버티고 있으시구먼요. 빠져 나오기 버거워...@@;

oldhand 2005-11-0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수필에서도 여전히 대단하신 필력입니다. ^_^

jedai2000 2005-11-08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무코님...하수 처리장은 우리 동네에만 있을 테니까 안심하시고 나가서 바람도 쐬시고, 낙엽도 밟으시고, 영화도 보세요..^^;;

아영엄마님...그 사람들은 제사 잘 지내서 조상님 덕 많이 봐서 길거리에서 그러구 섰나 보죠 뭐..ㅋㅋ

올드핸드님...아이구~ 수필은 무슨요..^^;; 그냥 잡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