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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폴 C. 도허티 지음, 한기찬 옮김 / 북메이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연초에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혹평도 많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상당히 좋게 봤습니다. 젊은 나이에 눈부신 성공으로만 내달린 영웅의 일대기만이 아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동성애,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증오라는 이중적 감정에 시달리는 복잡한 알렉산더의 내면을 그린 점을 좋게 봤거든요.권력욕의 화신인 어머니와 마초의 대명사인 아버지가 자신을 옥죄는 질식할 듯한 좁은 나라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만 눈을 돌리는 그의 여정은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해 상당히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접했습니다. 제목의 알렉산드로가 알렉산더였더군요. 관심이 가서 읽어 봤는데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무엇보다 영화에 나오는 유명 인물들이 소설에도 전부 등장합니다. 알렉산더의 친구이자 죽음으로 함께한 연인 헤파이스테이션, 훗날 파라오가 되는 부하 장수 프톨레마이오스, 왕중앙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등 영화로 친숙한 인물들이 전부 등장해 무지 반가웠습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소설이랑 거의 흡사하더군요. 저는 역사가들의 견해들이란 대체로 비슷한 가 보구나...했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더군요. 이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 1986년에 나온 알렉산더 연구가 로빈 레인 폭스의 저서를 많이 참고했다고 적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올리버 스톤을 6개월간 따라다니며 영화 <알렉산더>의 자문을 했다더군요. 그러니 내용이 비슷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그래도 알렉산더의 생애를 그린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요, 이 작품은 엄연히 역사 미스터리물입니다.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작품 내내 스며 들어 있기에 영화랑은 분명히 차별됩니다. 전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는 눈을 소아시아로 돌립니다. 하지만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중왕 다리우스가 지배하고 있었죠. 전쟁의 기운은 점차 고조됩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인 의사 텔레몬은 왕의 호출을 받고 전장으로 향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전쟁은 정보로 결판이 납니다. 낯선 아시아로 쳐들어가다 보니 알렉산드로스는 그 쪽 지방의 주민들을 고용해 길잡이꾼으로 씁니다. 하지만 그들은 밀실에서 한 명씩 교묘하게 살해됩니다. 단서는 단 하나 다리우스 대제가 알렉산더에게 '나이팟'이라는 첩자를 심어 놓았다는 것...그는 다리우스에게 방해가 되는 길잡이꾼들을 하나씩 살해하는 거죠. 지혜로운 텔레몬은 왕을 위해, 자신을 위해 밀실 살인 사건의 비밀을 풀고 첩자를 잡아야 합니다...
이상이 줄거리인데 대단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작가 폴 도허티는 본질적으로 역사가의 눈과 소설가의 가슴을 겸비한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복식이나 행동 양식, 건물, 전쟁 묘사 등에 관해서는 치밀하게 세부적으로 묘사하는데 매우 그럴 듯 합니다. 또한 작가의 상상에 의거한 허구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역사 속에 감춰진 비밀을 재구성합니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추리 소설적 측면을 차지하고서라도 대단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특히 클라이막스의 전쟁 장면의 장쾌함은 놀랍습니다. 머리 속에 장엄한 전쟁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듯 하죠...추리적 측면에서도 과히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적어도 역사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추리적 측면은 부차적으로 허투로 넘기진 않았습니다. 진상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사용된 트릭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요즘 재고 서적으로 많이 돌고 있던데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뒷 표지에 <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이후 최고의 역사 미스터리>라는 말이 있던데, 제 생각에는 그 이상입니다. 역사 묘사는 더 치밀하고 미스터리는 더 흥미롭습니다. 지적이고 세련된 소설입니다. 꼭 권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