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줄기차게 추리 소설을 이틀에 한권 꼴로 읽는 남자 나혁진입니당...집에 책이 3,40권 쌓여 있어도 일주일에 4,5권씩 보니 늘 책이 달리는군요. 이번 달에는 7권의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습니다. 이번 달 테마는 일본 추리 소설입니다. <백야행 1,2,3>과 <마크스의 산 1,2>, <인생을 훔친 여자-화차>, <연속 살인 사건> 이렇게 주문했어요. <연속 살인 사건>은 동서판의 존 딕슨 카 작품으로 본격물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샀지요. 이 달에 사는 작품은 아주 흡족한 목록인데 기대만큼 다들 잼있었음 좋겠네요.  

<폭스 이블>은 미네트 월터스의 신작입니다. 540페이지의 대작으로 지금 막 독서를 끝냈읍죠... 미네트 월터스는 영국, 미국 추리 작가 협회상을 휩쓴 상복이 대단한 영국의 여류 추리 작가입니다. 한국에는 <냉동 창고>와 <여류 조각가>라는 작품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건을 생각해 내는 스토리 텔러이고 문장력도 좋은 작가로 보여집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페미니즘이 녹아 있는 듯 보입니다. 데뷔작 <냉동 창고>의 주인공들은 여자 세 명이 레즈비언이라는 오해를 사며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의 온갖 테러와 비난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류 조각가>는 남편의 폭력을 견뎌내야 했던 여기자와 뚱뚱하고 못난 외모로 인해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았던 '여류 조각가'라는 두 여성이 연대하고 깊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번 작품 <폭스 이블>에서의 여주인공 낸시 스미스는 군인으로 남자와도 육체적으로 겨룰만큼 강인하며 정신적으로도 터프합니다. 현대 여성 작가로서 페미니즘적 글쓰기가 작품에 배어 있는 듯 하군요....

<폭스 이블>은 사실 줄거리가 대단히 복잡하고 반전이 휘몰아치는 그런 책은 아닙니다. 영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이야기에 가깝죠.
충격적인 범죄 이야기도 별로 나오지 않고요. 그러면서도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70대의 늙은 아내가 집 앞에서 잠옷만 입은 채 동사하고 그녀의 남편 러키어-폭스 대령은 그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게 되지요. 러키어-폭스 대령의 아들,딸은 천하의 망나니로 재산을 받기 위해 대령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고요.

한편 러키어-폭스 대령의 딸 엘리자베스는 젊었을 때 실수로 사생아 딸을 낳게 되고 그 딸은 입양 처리됩니다. 입양된 딸 낸시 스미스는 세월이 흘러 자신의 할아버지 러키어- 폭스 대령과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이 쪽 이야기가 한 축이고, 어둠 속에서 러키어- 폭스 대령과 낸시 스미스를 지켜 보는 정체 불명의 사악한 사나이 폭스-이블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다른 축입니다. 두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다가 나중에 하나로 합쳐지는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론 신문기사, 편지, 휴대폰 문자 메세지 등의 삽입글들이 군데 군데 들어가면서 사실감과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이는 작가의 전작들에서도 어느 정도 보이는데 작가가 주로 이용하는 테크닉인가 봅니다. <폭스 이블>의 구성은 대단히 짜임새가 있어 한 순간도 늘어지지 않습니다. 기관총같은 글쓰기라고나 할까요... 러키어 폭스 대령의 가족사에 얽힌 비밀 이야기와 폭스-이블의 사악한 행동들이라는 두 이야기가 영화의 교차 편집처럼    
흥미롭게 병행되다 가끔 신문기사, 편지등이 작품에 임팩트를 더하는 거죠.

영국의 전원에서 벌어지는 지리멸렬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흥미롭게 묘사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익명성에 기댄 협박 전화가 러키어-폭스 대령의 정신을 서서히 파괴하는 장면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 자주 쓰인 익명의 편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듯해 주목을 끕니다. 그녀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긴 페이지 내내 독자의 관심을 끄는 재주를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출간된 그녀의 작품 중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으로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군요.

그러나 결점을 들자면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진상을 알고 나면 충격이 덜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폭스-이블의 정체는 생각보다 너무 약해요. 강한 반전이 있는 영화나 소설에 익숙해진 저로서는 심심한 폭스-이블의 정체에 실망을 아니할수 없군요. 폭스-이블만으로는 약했다고 작가도 생각했는지 공범을 한명 추가했더군요. 그러나 그 공범이 지목되는 과정도 좀 느닷없구요. 여튼 결말이 좀 깔끔하지 못하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입니다. 치명적인가요? 그래도 결말에 이르는 동안의 과정은 너무 잼있답니다. 로맨스도 있고, 강렬한 서스펜스도 있지요. 등장하는 인물들 묘사도 좋구요...
저 개인적으로는 꽤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영국 추리 소설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서라도 꼭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네여...



p/s 어디선가 번역이 굉장히 좋다는 글을 읽었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깔끔하고 유려하게 변역이 잘 되어 있습니다. 요즘 추리 소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가장 잘된 번역이라는데
저도 한표 던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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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5-10-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아마 같은 분이 하셨을 겁니다. 아주 좋지 않죠 -_-;;

mong 2005-10-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재미나게 읽는 중입니다 ^^

jedai2000 2005-10-27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끝까지 재미나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