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그간 넘 뜸했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애 사업에 골몰하느라 아무래도 방문을 자주 할 수 없더라구요. 연애 사업의 결과는??? 제가 이 곳을 다시 찾은 거 보면 짐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T.T 여튼 저뿐 아니라 다들 바쁘신지 글이 뜸하네요. 하긴 올해도 벌써 다 가는데 이룬 일도 없고 허무하기도 하고 머 그래서 저부터도 요즘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오더군요...

오늘 소개드릴 책은 미야베 미유키라는 일본 작가의 <인생을 훔친 여자>입니다. 명성을 익히 들은 책이라 기대했는데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일전에 영국의 여성 작가들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일본 여성 작가들도 못지 않네요.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기리노 나츠오, 다카무라 카오루...전부 나름의 기품과 특색을 갖춘 거장급의 작가들입니다.

<화차>는 부상을 당해 휴직중에 있는 혼마 형사에게 그의 처조카가 찾아와 자신의 약혼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합니다. 평범한 실종 사건이겠거니 했지만 역시나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한 여자의 실종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사건의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은 자못 충격적이고, 또한 담배가 절로 생각날만큼 우울하고 애절합니다.

이 작품은 거대 자본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는 건 크레디트 카드를 이용한 손쉬운 대출과 대출금을 막지 못해 젊은 나이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가련한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건 그리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분별한 카드 회사의 카드 남발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도 파탄 직전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1993년에 나왔다는 겁니다. 우리 나라가 크레디트 카드로 인한 경제 위기를 맞은 것이 얼추 2000년 넘어서이니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얼핏 잡아서 한 10년쯤 벌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건 그냥 문외한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공히 일본 추리 소설의 전통이라 할 사회파 추리 소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작가는 그 어느 작품보다 예리하게 자본주의의 본질에 접근합니다.
특히 혼마 형사가 수사하면서 만나는 변호사는 크레디트 카드와 금융사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데,  아주 일품입니다. 저는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사회 병리 폭로에만 그치는 딱딱한 작품은 물론 아닙니다.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단서없는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은 일급 추리물로 손색이 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 개성이 넘치고,  심리 묘사도 완벽에 가깝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작품을 단 한편 읽어 봤지만 그녀의 실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소설가다운 눈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나가 작품 내내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 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말 한국의 소설가들은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해요...무거운 주제일수록 흥미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주제가 좋으면 머합니까? 재미가 없어서 아무도 안 읽으면 소용없잖습니까...그런 면에서 무거운 주제도 흥미롭게 요리할 줄 아는 미야베 미유키야말로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 자본주의라는 괴물같은 사회속에서 망가져 가는 개개인들을 묘사한 이 소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런 책이 이렇게 사장되어 있다는 건 정말 비극입니다. 특히 카드 대란으로 인해 사회가 아수라장이 되고, 범죄율이 급증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는 정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제 생각에 광고를 좀 더 빵빵하게 때리고 입소문만 잘 탔으면 100만부는문제없었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소외되어 있을 책이 아닙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가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읽어 보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걸작입니다. 미래의 추리 소설이 지향해야 할 모범이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과장인가요? 그만큼 훌륭합니다....

사랑하는 약혼자와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한 젊은 여자가 왜 사라져야만 했을까요...그녀는 왜 타인의 '인삼'도 아니고 '인주'도 아닌 '인생'을 훔쳐야만 했을까요...(이렇게 썰렁할 수가..-_-;;;) 그 이유가 밝혀지는 마지막 30페이지부터는 정말 가슴이 저릴듯히 애절합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정서적 감흥을 주며, 이렇게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안목까지 길러줄 수 있다니요...언급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오셔서 혹시 이 글을 읽을 기회가 되신 분들은 모두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만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P.S/ 읽으신 분만....마지막 장면 그렇게 찾던 그녀를 발견한 타모츠는 과연 무슨 말을 먼저 꺼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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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2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을 좀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들은 풍문에 의하면 올해 출간 계획이 잡혀 있었다는데.... 물건너 간 건지.. ;;

jedai2000 2005-10-2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굉장히 관심가는 작가입니다. 이건 비밀인데 조금 알아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작가 책이 안 나오는 건 범죄입니다. 일본에서의 위치에 비해 국내에서 너무 저조하죠. 일본 책 띠지에도 '미야베 미유키 씨 절찬' 이런 식으로 그녀 이름만 팔아도 팔린답니다. 대표작 <이유>와 나오키 상 수상작 <모방범>의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안 나오는지? <모방범>의 분량은 굉장하답니다.

panda78 2005-10-2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오오! 기대됩니다. 정말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에선 영향력도 대단하고, 평가도 아주 높다고 하던데 너무 안타까워요. 화차 한 권만 읽어봐도 마구마구 관심이 가던데.. 제발 좀 빨리 나와주길... 이유와 모방범!

jedai2000 2005-10-2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알아보기는 하는데 소식이 없네요. -_-;;; 초보 편집자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냥 더 기다려 봐야죠..^^;; <화차>가 카드라면 <이유>는 부동산을 다루고 있고, <모방범>은 한 살인 사건을 다양한 화자의 시점으로 묘사하는 구성이 돋보인다네요.

nemuko 2005-10-2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유>는 사 뒀는데 왠지 어려워 보여서 자꾸 뒤로 밀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화차>를 먼저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나저나 힘 좀 더 써주시면, 마구 번역되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jedai2000 2005-10-2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힘 없어요..T.T 사실 욕심 같아선 게이고의 좋은 작품들을 더 하고 싶죠. 솔직히 아직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은 그의 진가를 드러내기엔 부족해요. 본격 추리도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데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기리노 나츠오 같은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nemuko 2005-10-2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제다이님은 많이 구해 보실 수는 있으시잖아요... 근데 추리소설 시장이 많이 커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그리 독자가 많지는 않은가봐요? 다들 많이 사준다면야 당연히 많이 나올텐데 말이죠.

jedai2000 2005-10-2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마음만 먹으면 책은 쉽게 입수 가능하죠...그런데 제가 일본어에는 완전 까막눈이라, 있어도 못 본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어요..T.T 추리소설 독자 처참하게 적습니다. 소수의 마니아들이 많은 편이라 인터넷 등의 분위기는 뜨거운데 막상 책이 나오면 부진한 경우가 많죠. 이건 뭐 추리소설 좀 내본 출판사들은 다들 공감할 거예요. 추리소설 10만 양병설을 주창하는 바입니다..^^;;

panda78 2005-11-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10만 양병설! - _ -)b
그런데 백야행 리뷰는 안 올리셨나요? ^^

jedai2000 2005-11-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만명 중 판다님도 일익을 담당하셔야죠..^^;;
<백야행>은 리뷰를 안 써서요. 워낙 좋은 작품이죠. 게이고 신작은 가제를 <레몬>으로 붙였는데 재미있습니다. 기대하세요.

panda78 2005-11-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아아! ^ㅁ^ 기쁩니다! 게이고의 신작이라니! ^^

jedai2000 2005-11-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작품 <레몬>은 두 여대생이 한 챕터씩 이끌어 나갑니다. 각자 어떤 비밀을 추적하는 서스펜스 구조인데, 게이고의 역량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두 여대생이 주인공이라 몰입이 더 잘 되더군요..-_-;;

panda78 2005-11-0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그러셨군요-
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짝사랑]을 읽었어요. 아직 백야행만한 작품은 못 봤지만, 다 평균 이상은 가는 것 같아요. ^^

jedai2000 2005-11-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짝사랑>은 좀...나오키 상 후보였죠. <레몬>이 아마 국내 나온 작품 중에는 <백야행>과 <비밀> 수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