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안소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샤라쿠는 기존 화단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혜성같이 등장해 1794년부터 1795년까지 단 10개월간 140여점의 우키요에만을 남기고 그야말로 홀연히 사라진 화가라고 합니다. 당대에는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유럽에 수출되면서 고흐 등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추앙을 받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홍도가 혹시 샤라쿠가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가설 때문에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미술의 세계에는 완전 문외한이나 다름없어 걱정은 했지만, 일본 우키요에와 샤라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매우 기대하며 읽은 책이랍니다. 대개 자기가 관심없는 분야는 읽지 않고 넘어가는 분들이 많은데 한 권의 책을 보면서 재미도 얻고 배움도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게 독서의 묘미겠지요.

 
샤라쿠 연구계의 양대산맥이 있습니다. 학계의 니시지마 교수와 재야의 사가 아츠시가 그들입니다. 두 사람이 대립하는 이유는 우키요에 연구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이죠. 우키요에는 본시 판화로 유통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완성된 판화 그대로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니시지마 교수의 견해, 판화는 조각칼로 밑그림을 파는 판화가의 솜씨가 작품의 완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판화 이전의 밑그림(육필화)에 진정한 우키요에 화가의 숨결이 드러난다는 것이 사가의 의견입니다. 둘다 나름 설득력이 있어 누가 옳고 그르다를 나눌 수 없는 문제죠. 그렇다면 서로의 학설을 존중하며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서 각자의 연구에 매진하면 될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은 그렇지 못했죠. 격렬하게 서로를 비방하며 학회를 조직해 자신들의 세를 구축하고 그 힘을 과시하기 일쑤입니다. 어디나 그렇지만 순수한 배움의 터전인 학계도 썩을 대로 썩은 모양입니다.


 
소설은 재야의 거물 사가 아츠시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합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사가가 자살을 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죠. 사가의 처남인 헌책방 업주는 이젠 쓸모없게 된 사가의 자료들을 헐값에 내놓는데 떨이로 자료들을 왕창 사간 게 바로 주인공이자 니시지마의 조교인 츠다입니다. 츠다는 설렁설렁 사가의 자료들을 살피다 기요치카라는 우키요에 화가가 머리말을 쓴 화집 한 권을 발견합니다. 그 화집은 완전 무명인 치카마츠 쇼헤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모은 것입니다. 허나 한 호랑이 그림에 뜻밖에 '도슈사이 샤라쿠가 치카마츠 쇼헤이로 고치고 그림'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의문의 거장 샤라쿠의 정체가 쇼헤이일까요? 츠다는 만약 사실이라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이 가설을 조사해보기로 결심합니다. 허나 조사가 깊어질수록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시체로 발견되고 마는군요.

 
츠다는 샤라쿠의 정체에 파고들기 위해 기존에 거론되었던 샤라쿠 후보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은 츠다의 조근조근한 설명을 통해 샤라쿠가 그간 알려진 대로 무명의 가부키 배우가 아니라 누군가 모종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정체를 숨기고 샤라쿠로 활동했다는 이른바 '샤라쿠 별인설'에 대해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호쿠사이, 우타마로가 어쩌구 저쩌구 등 엄청 많고 생소한 우키요에 화가가 등장해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기에는 상당히 버겁습니다. 여기서 정신줄과 함께 책을 놓을 독자들이 꽤 보이는군요. 하지만 당대 현실을 바탕으로 샤라쿠의 실체에 접근해 들어가는 작가의 대담한 상상력은 박력이 넘치고 무엇보다 꽤 공감이 가더군요. 읽고 나면 아, 과연 샤라쿠의 정체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샤라쿠의 정체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거론하다 만다면 관련 종사자들의 아카데믹한 즐거움에만 봉사하고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작가 다카하시 가츠히코는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을 준비합니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독서의 흥미를 빼앗을 우려가 있어 적지 않겠지만, 생각보다 이 작품이 스케일이 굉장히 크며 구조 전체를 트릭으로 사용하는 기발함이 있다는 것만 이야기해두겠습니다. 또한 전형적인 기차 알리바이 트릭 깨기 요소도 있어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더욱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독창적이고 뭔가 배우는 것도 있는 훌륭한 추리소설이예요. 읽어보면 일본에서 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바로 알게 됩니다. 다만 샤란큐는 좋아해도 샤라쿠는 관심없다거나, 김홍도, 신윤복도 잘 모르는데 왜 일본 화가까지 알아야 하느냐,며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는 독자라면 읽어내기 버거울 것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나 사정이 너무 진하게 배어 있어 번역으로 맛을 살리기 어려운 책들이 가끔 있는데, 안타깝게도 <샤라쿠 살인사건>이 그런 책으로 보입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한번 도전해볼 것을 추천하는 책이나 현실에서도 머리 아픈데 소설까지 공부하면서 보기 싫다는 분들은 굳이 잡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p.s1/ 작가 다카하시 가츠히코는 <샤라쿠 살인사건>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 <샤라쿠 살인사건>과 더불어 '우키요에 미스터리 3부작'을 이룬다는 <호쿠사이 살인사건>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 상, <붉은 기억>으로 나오키 상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중견 작가입니다. 우키요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데, 소개글을 읽어보니 걸물이더군요. 1960년대 고등학교 때 무작정 해외로 나가 일본인 가운데 처음으로 비틀즈를 만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네요 ^^

 

p.s2/ 부록으로 주는 우키요에 엽서 세트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대부분의 책 부록이 받자마자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만한 것들인데 반해 오래 보관하고 싶어지네요. 엽서 중에 다카하시 가츠히코가 어렸을 때 보고 반해 우키요에에 평생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소마의 후루다이라>는 저도 보고 놀랐습니다. 너무나 현대적이고 만화를 연상시키는 상상력에 우키요에를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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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10-1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라쿠가 뭔가 했더니 화가였군요 :)
너무 일본 문화가 녹아있는 작품은 정말 읽기 힘들더라구요.
요괴 이 정도까지는 나름 괜찮은데 말이죠.

그나저나 제다이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

jedai2000 2008-10-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라쿠는 유명한 화가래요. 저도 이 책 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답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일본 문화와 전통 우키요에에 대해서도 약간 배우고 나쁘지 않았답니다 ^^ 요괴하니까 갑자기 교고쿠가 읽고 싶네요 T.T

정말 감사합니당. 마이리뷰 한 6번 정도 된 것 같은데 마침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되서 기분이 느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