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군: 나 왔다. 오우, 뭐냐? 너 공부하냐?
강군: 응. 왔냐. 오랜만이다.
공군: 오랜만이나마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니가 책상에 앉아 있다니.
강군: 어, 잠깐 뭐 좀 할 게 있어서. 다 됐다. 거기 앉아 있어라.
공군: 아냐, 아냐. 뭘 하는지 봐야겠다. 뭐 쓰는 거야?
강군: 하하. 우리가 사는데 그냥 막 살아서 되겠냐. 계획성 있게 살아야지. 그래서 백년지대계를 세웠다.
공군: 계획은 우리랑 안 어울리는 단어잖아. 너 뭐 잘못 먹었냐?
강군: 임마, 너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나를 본받도록 해라.



공군: 그래, 뭔 계획이냐.
강군: 응. 서지혜랑 사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봤다.
공군: .......
강군: 어, 듣고 싶다고? 하하. 이거 비밀인데.
공군: 그런 말 안 했는데...
강군: 네가 그렇게 성화니 말해줘야지 뭐.
공군: 어이, 나 암 말도 안 했거든.
강군: 녀석, 호기심도.



공군: ......말해봐라.
강군: 먼저 서지혜를 만나. 그런 연예인들은 보통 주변에 떠받아들어주는 사람만 있을 거 아냐. 그럴 때 오히려 신선하게 한 마디 하는 거지.
공군: 뭐라고?
강군: "야, 이 X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공군: 그 다음에...
강군: 그리고 헤어지는 거지. 물론 그 당시에는 기분이 되게 나쁘겠지. 그런데 이제 그날 밤에 서지혜가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는 거지. "누구도 나한테 그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어."
공군: .......
강군: 그 다음엔 가만히 앉아 소식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 3일 안에 연락 온다니까.
공군: ....... 책 이야기나 하자.
강군: ....... 그러자.
공군: 거기 책상 위에 서지혜 사진이나 좀 치우고. 아주 입술이 하얗게 바랬구나. 얼씨구, 모니터에 침 덕지덕지 묻은 거 봐라. 니가 중학생이냐.



강군: 최근에 읽은 책은 <오듀본의 기도>야. 이사카 코타로 책이지.
공군: 왜 말을 돌려.
강군: 주인공은 이토라는 이십대 후반 남자야. 이 남자는 매사 도망만 치는 의욕이 없는 남자인데 최근에 눈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좋아하는 여자랑도 깨졌어.
공군: 신세 처량한 건 우리랑 비슷하네.
강군: 그렇지. 암튼 충동적으로 편의점을 털다가 경찰한테 딱 걸린 거야. 이 경찰은 이토의 중학교 동창인데 경찰복으로 사람을 현혹시킨 다음에 재미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게 취미야. 경찰이지만 강간, 마약, 살인 뭐든 다 하는 악인이지.
공군: 너처럼 악독한 놈이구나.
강군: 암튼 호송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고 눈을 딱 떠보니 낯선 섬인거라. 알고보니 웬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토를 데리고 어떤 섬으로 옮겨논 거지. 그런데 그 섬은 일본 지도에도 없고 150년 넘게 일본 정부와 단절된 그야말로 환상의 섬이야. 하여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걸작이야. 무엇이든지 반대로만 말하는 화가. 자기 멋대로 사람을 죽이는 게 허용되는 권총을 든 미남자. 너무 뚱뚱해서 한 자리에서만 20년을 산 여자. 게다가 사람 말을 할 줄 알며 과거와 미래 모든 걸 보는 허수아비까지.


공군: 무슨 <오즈의 마법사>냐.  
강군: 일종의 판타지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네. 그런데 그날 밤에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고가 살해를 당해. 아니, 기술 파손을 당해. 산산조각난 시체, 아니 잔해로 발견되지.
공군: 오, 허수아비를 파손한 범인을 잡는 거야?
강군: 그런데 그게 아냐. 생각해봐. 허수아비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섬이니까 살인사건이 나도 범인을 허수아비가 다 말해줄 거 아냐.
공군: 일종의 명탐정이군.
강군: 칼이네. 바로 그거야. 그런데 그 명탐정이 죽었으니 또 다른 살인을 꿈꾸는 사람은 실행에 나서기가 쉽겠지. 그래서 또 한 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거야. 이제부터는 허수아비 유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인공이 추리를 해야 하는 거지.



공군: 아주 독특한 내용이구나.
강군: 응.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실질적인 데뷔작인데 처음부터 그 사람 작품의 특징이랄까 원형이랄까 다 들어 있더군. 다소 과장된 듯한 묘한 인물들과 기묘한 사건, 재치있는 대사와 시원한 전개, 상쾌한 끝맺음과 무언가 담아갈 수 있는 여운까지 말야.
공군: 네 말만 들음 아주 신선한 작가일 것 같구나.
강군: <오듀본의 기도>는 미스터리 작가로 원래 출발한 이사카 코타로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것 같아.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굳이 미스터리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거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주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하는 허수아비, 뭐든지 반대로 말하는 남자 같은 기묘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통해 미스터리 장르를 비틀고 꼬는 재미가 있거든. 특히 흔히 추리소설의 핵심이 되는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허수아비의 역할과 일치시켜서 담론을 이끌어내는데,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명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명탐정이 있어서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뭐 이런 식이지.
공군: 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해라. 힘들겠다.
강군: 처음에 그저 스치고 지나갔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합쳐져 진실이 밝혀지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도 있고, 산뜻한 이사카 코타로 풍미도 있지. 데뷔작이지만 그닥 쳐지지 않는 것 같다.




공군: 오늘 빌려가서 한 번 봐야겠네.
강군: 이사카 코타로도 초기작과 요즘 작품이 좀 다른 느낌이라 팬층이 각각 양분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초기작들이 더 좋아. 최근 너무 다작해서 신선도가 떨어진 감이 많거든.
공군: 잘 될 때 빠짝 버는구나.
강군: 다 그런 거지. 뭐, <오듀본의 기도>는 작가가 아직 절정에 오른 상태가 아니니까 약간 산만한 감도 있고, 멸종한 새를 통해 한 종이 절멸하는 순간의 쓸쓸함이나 그 많던 새를, 너무도 많으니까 내가 몇 마리 죽여도 표도 안 나겠지, 하며 멸종시켜버린 인간에 대한 회의, 그러면서도 인간들의 의지와 서로간의 교감, 우정, 뭐 그런 것들로 인간성 회복을 꿈꾸는 등 주제적으로는 약간 거창한 면도 있는 것 같긴 하다. 데뷔작으로 너무 나간 감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처녀작이니까 소박하게 써야겠다,는 사람보다는 패기있고 좋지 않니?
공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꼭 읽어보겠다.
강군: 아, 읽어볼 때 웬만하면 옮긴이의 글은 건너 뛰어라. 후기 쓰기 싫어하는 역자에게 글을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옮긴이가 쓰고 싶을 때 써야지 안 그러면 이 책 옮긴이의 글 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거란다.  
공군: 잘 알겠다. 그나저나 실컷 떠드니까 목 마르지? 맥주나 한 잔 사라.



강군: 장난하냐. 돈없어서 밥도 못 먹고 있는데.
공군: 헐. 나도 얻으먹으려고 왔는데. 야, 그럼 집에 있는 기물이라도 팔자. 냉장고 같은 거. 들여놓을 것도 없는데 있어서 뭐하냐.
강군: 네 거 팔아라. 그럼.
공군: 좋아. 그럼 내기를 하자. 지는 사람 기물 팔아서 맥주 사기. 사자성어 끝말잇기 대결.
강군: 오케이. 시작해라.
공군: 양상군자.
강군: 자축인묘.
공군: 너 대학 나왔잖아. 어떻게 두 번을 못 돌아 이 자식아.
강군: 야, 이 X아. 네가 그렇게 잘났어.
공군: 암튼 뭐 팔 거냐.
강군: 냉장고.




공군: 그래도 둘이 같이 드니까 좀 낫지.
강군: 그래.
공군: 우리 신세도 참 거지 같다. 이 나이 먹어서 맥주 마실 돈이 없어 집기를 팔다니. 이것 참.
남보기 부끄러워서 원. 인생 헛 살았네. 정말 자괴감이...
강군: 마찬가지다. 에효, 우리 몇 살?
다같이: 서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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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5-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군 공군이 서른이라니 오^^

jedai2000 2007-05-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밝혀지는 강군 공군의 비밀이라죠. 일단 나이는 서른살, 대학은 나왔고, 백수 상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