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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58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스트레인지는 어린 크리스토퍼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 매일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개 짖는 소리도 듣던 아이. 창문을 내다보며 기적의 터치다운을 꿈꾸고, 경기장 밖으로 만루 홈런을 쳐내는 상상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예쁜 여학생을 그리워하던 아이. 엄마가 준비하는 아침식사 냄새를 맡고 엄마의 콧노래를 들었을 아이. 그리고 엄마가 고개를 삐쭉 들이밀며 이제 일어나 학교 갈 시간이다, 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던 아이......
LA에 제임스 엘로이가 있고, 보스턴에 데니스 루헤인이 있다면, 워싱턴 D.C에는 조지 펠레카노스가 있다. 비록 펠레카노스가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못해 진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결과 엘로이나 루헤인 급의 '크라임 픽션Crime Fiction' 대가 중 한 사람으로 거명하기에 부족함은 없을 듯하다. D.C가 미국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범죄율로 유명하듯이 펠레카노스의 작품의 수위 또한 대단하다. 그리스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다양한 체험을 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고 들은 밑바닥 생활을 묘파하기에 그렇게 리얼한 범죄소설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는 펠레카노스의 사립탐정 데릭 스트레인지 시리즈의 제1작이다. D.C 토박이 데릭 스트레인지는 초로의 전직 경찰관이자 현직 사립탐정이며, 흑인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이곳 D.C에서 바람난 애인 뒷조사로 짭짤한 이문도 좀 남기고, 애인이 있지만 적당히 바람도 피면서 그럭저럭 남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즐기는 것은 서부영화 사운드트랙 듣기. 도입부에서 스트레인지는 뜻밖의 의뢰를 받게 되는데, 크리스토퍼 윌슨이라는 사망한 흑인 경관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죽음을 재조사해달라는 것이 의뢰 내용이다. 크리스토퍼는 비번인 날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다, 노상 방뇨를 하려는 백인을 제압한다. 반항하는 백인과 실갱이가 커지자 소란이 나게 되고, 순찰 중 이 장면을 목격한 백인 경찰관 테리 퀸은 동료 경찰인 줄도 모르고, 총을 들고 있던 크리스토퍼를 쏘아 죽인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인데 크리스토퍼의 어머니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흑인이라, 천한 흑인과 같이 경찰 생활을 하는 것이 고까워 일부러 죽였다는 것. 스트레인지는 의뢰를 받아들여 테리 퀸을 만난다. 테리 퀸은 동료 경찰을 오인 사망케 한 죄로 해임되어 헌책방에서 일하고 있다. 멋진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좌절된 현실에 늘 억압된 분노를 품고 산다. 스트레인지는 비록 피부색은 다르지만 친절하고 진실되어 보이는 테리가 그리 싫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서부영화 사운드트랙을 좋아하는 취미도 같고. 하지만 때로 화산처럼 분출되는 테리의 돌발적인 폭력성에 완전히 그를 믿지는 못하고 있다. 더구나 테리가 한 눈에 반해 구애하는 흑인 아가씨 주아나에 대한 테리의 마음이 혹시 자신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위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작가 조지 펠레카노스는 오우삼의 <첩혈쌍웅>의 미국 배급을 맡기도 했단다. 아마도 오우삼과 <첩혈쌍웅>을 무척 좋아하는 듯,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의 스트레인지와 퀸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고결한 남자들만의 우정으로 점차 분신이 되어가는, 영락없는 오우삼 영화의 두 주인공 모습과 판박이가 아닌가. 여기다 작가는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영화 문법도 그대로 가져온다. 비열한 마약상, 타락한 경찰, 사기꾼, 마약에 중독된 창녀, 백인 쓰레기, 남미 갱 등이 등장해 페이지를 욕설과 수다로 화려하게 수놓으며, 각각 다른 인물과 이야기가 툭툭 던져지다 나중에 모든 상황이 하나로 합쳐져 짜릿한 쾌감을 주는 스타일은 그야말로 잘 만든 타란티노 영화를 보는 듯하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스트레인지와 퀸에게 각각 포커스를 맞추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와 전혀 무관한 마약 밀매꾼들의 이야기도 병행되어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었다. 하지만 이 세 이야기는 결국 정교하게 한 가지 결말로 수렴되니 안심하기 바란다,
주인공은 스트레인지지만 더 매력적인 인물은 자책감과 분노, 열정, 억압, 혼란으로 가득찬 복잡한 내면의 퀸이기에, 그가 범인이 아니었으면 하고 몹시 바랐다. 하지만 계속 의혹의 여지를 남겨두어 그가 악인인지, 정의의 편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게끔 만든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며, 스트레인지가 고생스레 모아온 관련자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결국 사건의 진상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독창적이며 매우 흥미롭다. 이젠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 되는 미국의 인종 갈등도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갈등을 넘어 아예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흑백의 모습은 깊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하지만 결국 흑인 스트레인지와 백인 퀸이 하나가 되는 것은 마약범들의 노리개가 된 아가씨를 구출하기 위해 <황야의 무법자> 음악을 들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하면서부터인데, 약한 여자를 구출하는 서부 사나이들의 활극이란 점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주의와 마초이즘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보기에 유치한 영웅주의와 마초이즘이 미국의 본질인 것을.
거의 익히지 않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처럼 생생한 폭력과 도발적인 성애 장면, 걸쭉한 욕설, 대중문화에 바탕을 둔 농담(<리쎌 웨폰>을 패러디한 농담이 그중 백미다) 등 B급 영화스런 재미가 살아 있는 책이다.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좋아할 사람은 거품을 물 그런 작품. 쓸데없이 꼬아서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저돌적으로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미국 사회를 안에서부터 곪게 만드는 고질적인 문제들-인종 차별, 범람하는 마약, 총기 허가 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을 가진 작품으로,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 이 모든 문제들을 직시할 것을 종용하기에 결국 깊은 감동까지 남긴다. 조지 펠레카노스, 크라임픽션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이제 빗소리만 시끄러웠다. 빗줄기가 창고 지붕을 하염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정체가 뭐야? FBI? 마약반?"
레이가 물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혼자야."
얼이 말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군. 당신 카우보이야?"
레이가 비아냥댔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
p.s/ 아무리 복고 열풍이라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표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들고 읽으면 다 쳐다보는 것 같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 원제 이 살리기 어려운 제목이라지만, 지금 제목보다는 더 좋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괜찮은 작품인데 표지와 제목에서 먼저 점수가 깎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