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 마이크 해머 시리즈 3 밀리언셀러 클럽 32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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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는 죽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라지만, 우리 곁에서 거장급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은 늘 가슴 아픈 일입니다. 2006년 6월 17일 그가 창조한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와 함께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하드보일드 소설의 거장 미키 스필레인 역시 많은 독자들의 아쉬움 속에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1918년생이니 88세로 굉장히 장수했네요.

 

미키 스필레인은 원래 코믹북의 스토리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다, 2차대전 때 공군으로 참전했고 무사히 귀환합니다. 전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1947년에 범죄자보다 더 폭력적인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가 첫 등장한 <내가 심판한다>를 내놓았습니다. 2작, 3작인 <내 총이 빠르다>와 <복수는 나의 것>은 1950년에 나왔는데, 하드커버로 나온 초기에는 반응이 그저 그랬다 합니다.

 

그러나 제지 산업의 발전으로 종이값이 낮아지고, 질 낮은 종이에 인쇄해 값싸게 파는 페이퍼백이 나오게 되면서 그의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끕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미키 스필레인의 작품은 대략 1억3천만부 이상 팔렸다고 추산되고 있으며, 이 수치는 그와 당대에 활동했던 작가 중에서는 제 생각에 애거서 크리스티 정도가 조금 더 혹은 조금 덜 팔았을까 비교될 작가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당히 야해 눈요기도 되고, 시원스런 폭력 장면에 거침없는 마이크 해머의 행보는 푼돈을 들여 주말 밤을 짜릿하게 보내고 싶었던 당시 독자들의 마음에 그만큼 부합하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비평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비평가들이나 레이먼드 챈들러, 앨러리 퀸 등의 동료 작가들에게 악평을 받았고, 지금도 새로이 높게 평가하는 분들을 만나보기는 쉽지가 않네요. 마초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흔히 여성 독자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볼 때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소설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합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도 19세기 들어서면서 이성과 논리가 추앙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행했던 것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명한 추리소설들에 등장하는 소도구도 마차-자동차-비행기 등으로 시대의 흐름과 변화, 발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미키 스필레인이 반영한 시대상은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2차대전이 끝난 직후입니다.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거나 아니면 자기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인 수만 명의 남자들이 미국 본토로 돌아왔습니다. 전쟁에서는 프로페셔널로 단련되었지만, 평범한 사회인으로 뿌리내리는 건 거칠대로 거칠어진 참전용사들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웠을 부분입니다. 그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디 신사가 남아 있었겠습니까?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폭력성은 변모한 미국 남성들의 모습이 투영된 결과로 보여집니다.  

 

게다가 전쟁물자가 풀리고 경기가 좋아지기야 했겠지만 그게 어디 전직 군인들 몫이겠습니까? 비리를 저지르는 정치인이나 갱들, 졸부들이 가져가겠죠. 미키 스필레인은 주인공 마이크 해머를 참전용사 출신으로 설정하면서, 실제 참전용사들의 분노를 대표로 한주먹에 쏟아내게 만들었습니다. 마이크 해머는 악당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총알밥으로 삼으며, 살인자라면 여자도 봐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마이크 해머의 지론을 좋아할 사람들이 무척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마이크 해머의 어마어마한 인기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크 해머는 마초의 대명사다, 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작가 대신 변명을 하자면, 그가 직접적으로 여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사실 없습니다. 여자를 때리지도 않고(물론 여자가 살인자일 경우에는 쏴 죽이기도...), 강제로 범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오는 여자 일부러 피하지는 않는다는 주의인데, 사실 미키 스필레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이 마이크 해머에게 한 눈에 반하고 어떻게든 잠자리를 갖고 싶어 안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미키 스필레인과 마이크 해머의 유치한 남성 판타지로 넘어가주는 아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이크 해머는 사랑에 빠진 창녀가 과거 때문에 고민하자 자기도 과거가 복잡했다, 앞으로가 중요하지 과거는 중요치 않다는 쿨함을 보여줍니다. 자기는 즐길대로 즐기면서 여성에게는 순결을 강요하는 그런 이중인격자는 절대 아니라는 거죠.

 

<복수는 나의 것>은 13편이 나온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제3작으로, 전우와 우연히 재회해 코가 비뚤어지게 마신 다음 날 전우가 옆에서 죽어 있어 마이크 해머가 범인으로 몰리면서 시작됩니다. 사립탐정 면허증을 반납당한 마이크 해머가 비서이자 역시 탐정면허가 있는 벨다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마이크 해머와 벨다와의 애정의 줄다리기가 한 축인데, 벨다는 아니나다를까 마이크 해머에게 반했지만 벨다와 결혼하면 그녀까지 위험해질까 두려워하는 마이크 해머는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조사 도중 위기에 처한 벨다를 구하기 위해 질주하는 마이크 해머의 명장면을 놓치지 말길 바랍니다.  

 

마이크 해머는 악당들과 대결하는 터프가이가 미녀도 줄줄이 손에 넣는다는 남성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50년대의 제임스 본드였으며, 미키 스필레인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하드보일드 문체에 그 이전에는 누구도 그렇게 쓰지 못했던 박력 있는 폭력 장면의 대가였습니다. 전후라는 혼탁한 사회 상황과 페이퍼백의 유행이라는 시운을 타고 두 마초는 대성공을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 해머가 인기 있는 사회는 그만큼 서민들의 억눌린 한이 많은 불행한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이크 해머는 소설에서만 영웅으로 남을 뿐, 실제로는 어디서도 그런 불행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소망을 마지막으로 남겨 봅니다.

 

 

그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나는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클라이드는 이제 내 손에 죽은 목숨이다.

"마이크."

"말해 봐. 벨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어야만 했다.

"그 사람이 거의.....할 뻔했어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깊이 숨을 쉬었다. 클라이드는 이제 몇 분 안에 죽을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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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도 3류소설로 평가받고... 그정도는 아닌데 참 아쉽습니다.

jedai2000 2007-02-2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류소설이었으면 1억부 판매는 불가능했겠죠. ^^ 분명히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