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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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사진을 아예 뒤표지로 대체했다. 작가의 말이 이미 제목을 그대로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밥냄새가 나는가 싶어 코를 벌렁이게 하는 이 책은 일상의 소중함을 누리는 일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그 정겨움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추억 중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서면 배가 고르고 마침 집에는 늘 밥이 있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이었지만 보온밥통에는 밥이 따끈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도 출출하면 동생들과 당시 슈퍼를 하는 엄마를 보러가는겸 과자도 먹으러 가고는 했다. 집에서도 가까운 곳이어서 엄마의 부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상의 모습을 누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책에서 만난 순지의 시간은 너무도 더딘듯했다.
 
 주인공 순지는 가난하지만 가족과 행복했다. 그러나 거듭된 불행으로 경제적으로도 힘겹지만 엄마도 돌아가신다. 아빠의 술주정과 폭행, 새엄마, 배다른 동생 등 그야말로 고등학생 순지가 겪어가기에는 벅찬 사건의 연속이다. 옛날 드라마처럼 신파적이게까지 느껴지는 풍파 속에서도 순지는 작은 일상을 꿈꾸고 지켜가려 노력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라는 게 서글프다. 어린 사춘기 소녀가 겪어가는 혹독한 성장보고서였다.
 
 

 살림이란, 아니 삶이란 이처럼 지나간 손길 위에 또 하나의 손길을 얹는 것일까? 할머니의 손길 위에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손길이 얹힌다. 물론 모든 것은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으면서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232쪽.
  그러나 순지는 곧고 강했다. 환경 탓을 할만도 하지만 미련할 만큼 사람을 믿었고 기다리고 삶에 순응한다. 결국, 기다림의 끝에서 만난 아빠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때에도 이 우직한 소녀는 말없이 밥 짓는 것으로 마음을 다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대신 아이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견뎌냈다. 그렇게 훌쩍 커간다.
 
 박상률 작가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데 어른의 관점으로 읽더라도 정겨웠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읽는다면 어떨지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신파적이라고 느꼈을 부분도 어쩌면 그들은 더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된다. 그 시기는 모든 감정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장했다가 끝없이 변화하는 시기이니 말이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책이다. 밥을 해주는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순지처럼 꿋꿋하게 나서서 직접 밥을 해먹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순진하고 속없어 보이는 순지가 미련한 게 아니라 실은 누구보다 예쁘게 보였다. 붉고 강렬한 맨드라미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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