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번「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이은 김영하 작가의 두 번째 책은 최근 작품을 택했다.「살인자의 기억법」은 역시나 제목이 독특하고 표지 또한 강렬한 원색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일까. 살인자가 주인공이라니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주인공 노인 김병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인데 그가 연쇄살인범이었으며 살인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흥미를 잃고 평범하게 살아왔고 늙어서 어느 순간 병이 든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서서히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자신뿐 아니라 모든 것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병.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 은희와 그녀를 노리는 의문의 남자. 그로부터 딸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오래전 살인자였던 70세의 치매 노인이라니! 설정부터 흥미롭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 35,6쪽.

 

  게다가 이 책의 문장은 아주 짧고 단순하다. 독자에게는 정말로 쉽게 읽히고 넘어간다. 책도 두껍지 않은데다 여백도 많아 가독성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그만큼 흡입력도 강하다. 그러나 읽으면서 몇 곳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나 사건의 해결보다 그저 일상적인 별일 아닌듯한 문장이 걸렸다. 내 필터에 걸린 부분은 개에 대한 부분이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가 있다! 역시 결론은 그러했지만 줄거리를 노출시키는 일이라 그만 적어야겠다.
 
 독자는 단숨에 읽어내려가지만 작가는 사실 굉장히 어렵게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얇아서 더 두꺼웠으면 하는 바람, 사건의 해결에 대한 바람 등을 등진 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허를 찌른다. 아, 그래 김영하 작가였지. 죽음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의 죽음과 이 책의 죽음은 확실히 달랐다. 치매라는 형벌은 그 어떤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였으니까. 살인자의 기억법은 결국 살인자의 형벌이 아닐까. 영원한 유배와 같은. 끊임없이 자신을 잃어가면서 동시에 지켜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마저도 다시 잊어버리고 다음 순간 다시 공포에 빠지는 종신형. 그리하여 이 책은 읽을 때는 흥미롭지만 읽고 나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 11쪽. 시를 배우러 다니는 문화센터에서 강사가 그의 시어가 참신하다고 하자 주인공이 속으로 한 말.

 
  이 말은 작가가 처음부터 독자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비유와 비유가 아닌 바를 우리가 다 구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일부러 모호하게 해서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거나 하는 고도의 기술을 써먹은 걸까. 그러기에는 치밀하지만 결국 날것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쉬운 점은 문장도 짧은데 책도 얇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독자를 몰입시키는데 완벽했으니 작가의 힘이다. 삶과 죽음을 뒤집는 아니 격렬하게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어서 이 작가는 장난꾸러기 소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대가 된다. 
 
 
 

 

■간단 서평: 단순명료한 글과 줄거리 속에 숨은 비유찾기 놀이? 가독성, 몰입도 최상. 빨리 끝나서 아쉽지만 곱씹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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