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여러 유형의 책과 마주하게 된다. 필요에 의한 책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책까지. 그래서 다양함 속에 때로 부산하게 책장만 넘기다 마는 때도 있다. 그러나 책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반대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문장이나 상황, 인물을 간접적이지만 그 어떤 직접적인 상황보다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을 딱 만나기 때문인데 이때의 공감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신기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말과 위로보다도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 다정하게 속삭여주니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와 그녀도 즉 타인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비록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존재에서 느껴지는 감동의 파장은 뜻밖에 크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은 바로 책을 읽으며 우리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게다가 한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추억이나 감정까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다.

 

 저자 서유경은 현재 네이버 책 관련 파워블로거(http://littlegirl73.blog.me)로 특히나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소설을 드물게 읽었던 내게는 그래서인지 참으로 반가운 책이었다. 한국문학 속 인물 등을 통해 풀어낸 그녀의 일상과 문학 이야기에 빠져보자!

 

 

순임이 엄마와 주인공의 삶이 같을 수 없다. 다만, 산다는 건 누구나 같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절망을 어떻게 길어 올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매일매일 절망을 끌어 올리며 그 순간을 행복해하는 순임 엄마처럼 말이다. 

 여름마다 장마는 찾아온다. 우리는 장마가 끝날 걸 알면서도 장마가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장마가 끝난 후 더 큰 태풍이 몰려올까 걱정하는 것이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는 지금, 이곳이 병원이 아니란 사실에 감사하다. 삶은 때때로 장마의 날들을 견디는 건 아닐까. 지루한 장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것이다. 회색 하늘이 걷힌 자리에 뜨거운 태양이 당당하게 설 것이다. 뙤약볕 더위가 몰려오면 한편으로는 장마의 날들을 그리워하니까.

 

-본문 57-58쪽. 절망을 어떻게 길어 올릴 것인가: 절망을 건너는 법 중에서. 

  공지영의 단편 <절망을 건너는 법>을 읽지 않았더라도 저자의 이야기에서 독자가 느끼는 공감대는 다시 한국소설로 이끈다. 돌아보건대 소설 그중에서도 한국소설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진다. 우리와 동시대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점. 게다가 비슷한 상황과 인물을 통해 함축적이지만 잊고 살던 기억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는 그래서 속도가 더뎌졌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여기에도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찌 보면 무게감이 잠시 엄습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그 무게감의 삶의 고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버거움이 아니라 오래전 헤어진 그리운 무언가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점점 공감의 폭은 커졌고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분명 치유하는 책읽기이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시종일관 독자와의 유대는 이어가면서 차분했다. 담담한 어조여서 더 좋았다는 말이다.

 

 마음이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떨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사실 서평도 임신 후 몇 달만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서없이 쓰게 되었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책이라 털렁털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써야 하는 서평이 여러 개 있는데 도무지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만으로 실로 오랜만에 흐뭇함을 느끼고 있다. 무료하고 지친 일상을 오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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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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