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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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 문화공간을 즐기는 편이지만 백화점은 그리 즐기지 않는다. 윈도 쇼핑은커녕 쇼핑 자체를 즐기지 않아 갈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있었으니 가구 층이었다. 이 점은 저자와 마찬가지라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지만, 저자처럼 전 층을 두루 보지 않아서 다른 층은 그야말로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로 가는 장소는 백화점 건물의 영화관이다. 아니 이었다. 이젠 과거형이 된듯하다.   

 그러니 누군가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 틀림없이 지각하고야 만다. 약속보다 일찍 나서지만, 백화점이란 공간에서 딱히 구경하며 걸어 다니는 게 어색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 층부터 들어서면 화장품이 즐비한데 난 화장품에 관심도 없고 사용하는 것도 정해져 있다. 그러니 선물을 하더라도 특정 브랜드만 보고는 끝나버리기에 영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백화점은 진화해간다. 그래서 옥상정원이며 여러 장소가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백화점에 대한 기억이 전무후무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하나씩 나타났다. 결혼 전 압구정 현대 백화점에서 각종 스피커 구경을 하던 기억, 옥상정원, 작은 꽃집과 구석을 차지한 카페 등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은 주로 서점에서나 느끼는 거로 생각했는데 당시의 나는 스피커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잠시 말한 가구. 가구를 보면 어쩐지 정겹다. 물론 디자인과 재질이 중요하지만 나와 혹은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는 가구라 해도 내 흥미를 끄는 일이 많다. 그래서일까. 백화점을 취재하고 또한 백화점을 즐기는 저자의 섬세한 글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에세이라 더욱 저자만의 개인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니 그럴 수밖에!


 "사람들은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얻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파스칼- (201쪽.)
 백화점을 즐기지 않는 내게도 이 책이 즐거웠던 건 원하는 것을 향해 집중하고 지켜보며 어느 날은 사서 돌아오는 그 행복의 순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누구에게는 향수, 가방, 가구, 머그잔이거나 백화점이 아닌 곳의 책, 다이어리, 엽서이더라도 그로 인해 얻은 행복이란 짜릿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허기짐을 느끼거나 끝낼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수집에 대한 부분이 그래서 더욱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엽서와 책을 모아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엽서는 결국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선물하면서 모았을 때보다 더 큰 행복을 느꼈다. 책도 마찬가지로 처지 곤란의 상황을 경험하고는 적당히 모이면 바로 필요한 이에게 보낸다.

 수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쓸모'가 아니라 '의미'에 있다. 그 쓸모없음을 의미있게 만든느 것, 거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수집가의 눈과 발견이다.

 수집품에 담겨 있는 것은 뜨거운 마음의 힘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수집은 결코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행위라는 것. 수집의 행위에 반성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습벽과 사욕 때문이라는 것을.

 

-253쪽, 8F 수집, 그 쓸모없음의 의미 중.
 저자의 여러 성향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다독하는 작가, 인간적인 모습 등 그리고 백화점에서 그가 느끼는 것과 발견하는 것들까지 마치 종합선물을 받은듯하다. 백화점의 이모저모를 이렇듯 자세하게 들려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까지 녹아있으니 한 편의 멋진 에세이로 탄생했다. 쇼핑의 기쁨과 고통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쇼핑의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저자처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집에 굴러다니는 백화점 무료 주차권은 이제 며칠이면 쓸모없어진다. 그럼에도 갈 일은 없다는 게 나 같은 독자의 반응이지만 나중에 걸어서 가봐야겠다. 집 근처에 있는데도 너무 멸시한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을 하나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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