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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천양희 지음 / 열림원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좋아하지만 다양한 시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시 세계를 오롯하게 만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시의 여운이 오래가서일까. 늘 시집을 곁에 두고 싶지만, 어느새 한 달에 한 장도 넘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던 요즘 반가운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을 만났다. 올해 들어 만난 몇 권 안 되는 시집 중 시인의『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를 인상 깊게 읽어서 반가움이 더 컸다. 희망의 파랑새라는 인식 때문일까. 표지의 파란 우산 또한 그렇게 와 닿았다.
자기 성찰이 강한 시인이며 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는 건 연륜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시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산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시를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다는 시인도 있고, 시는 곧 생활이라는 시인도 있고,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나 같은 시인도 있다. 잘 산다는 것은 시로써 나를 살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일생을 산다는 건 무엇보다 복된 일일 것이다. (5~6쪽.)
시집에서도 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고뇌가 느껴지더니 역시 산문집에서도 시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때로 절망하고 시에 함몰될 듯 힘겨워도 결국 시를 쓰는 일이 곧 운명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끝내 꽃을 피워내는 것이 여느 꽃들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런 시인이 주는 위안은 남다르다.
시에 대한 열정은 곧 삶에 대한 열정으로 느껴졌다. 이토록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몰입하는 모습도 좋았고 어릴 적 문학소녀의 모습이나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정신적 유산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했다. 온통 시에 흠뻑 빠진 페이지마다 싱그러운 꽃처럼 피어났다. 산문을 만나는 즐거움, 사람내음을 오래간만에 느꼈다.
우리나라는 입시 제도 때문인지 시 교육이 좀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시 한 편을 읽고 느끼고 이해해야 시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인데, 읽고 느끼기도 전에 시를 분석한답시고 해체시켜 버리니 어떻게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잘못된 시 교육은 우리의 언어를 제대로 쓰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미래의 훌륭한 시인을 배출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325쪽.)
우리가 만나는 시가 시인들의 숨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는 거 같다. 천양희 시인만 해도 첫 시집을 내고 무려 18년이나 침묵 후 다시 시를 썼다. 죽지 않기 위해 썼다는 말에서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시인이 책에 대해 쓴 글들도 기억에 남지만 역시 시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으뜸이다.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글도 있지만, 저자의 인생이나 그 안의 의미가 아름다운 글도 있다면 당연 후자 쪽의 글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자유롭게 써서 가끔 반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읽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오히려 그마저도 인간적으로 느껴지니 한 권의 책이 참으로 따스하다. 시인을 더 이해할 수 있어서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