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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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 단연 그들의 문장과 철학, 학문을 깊이 알고 싶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어찌나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지 만날 때마다 탄성과 부러움에 취하지만 무엇보다 우정이 함께일 때 감동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김려는 들어보았는데 이옥은 이번에 처음 만나보았다. 아니다. 정민의『미쳐야 미친다, 2004년』에서 만났었구나! 아무튼, 난 이들의 문장에 단번에 빠져든다. 박지원이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았듯 이옥도 끝끝내 굽히지 않으으로 유하지만 강하게 생을 마쳤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만의 문체를 마음껏 펼쳐볼 수 없었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정조와 당시 시대상을 말할 수밖에 없다. 강명관의『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2007년』를 통해 조선 시대 문인들을 다양하게 만났었는데 그중에는 유명한 세종대왕, 정조, 이덕무 등 실로 매력적인 인물이 많다. 그중 정조는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조선 시대의 책보급은 널리 있었지만, 책과 사상을 탄압한 인물로 거론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정조의 문체반정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강명관 저자가『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의 해설을 썼다.

 

 정조는 당시 유행으로 사대부까지 흠뻑 빠졌던 패관잡문, 소설류의 문체를 전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 중심 세계관 더욱이 왕관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여러 상황에 누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얽힌 주도세력 등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활발한 문예활동을 막지는 못했다. 이옥도 결국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았고 김려는 이를 모아 이옥만의 책은 아니지만 여러 벗의 글을 묶어 문집(『담정총서』, 김려의 문집은 『담정유고』)을 완성했고 남겼기 때문이다.

 


임금은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칭했다. '하늘의 달은 하나뿐이지만 그 달은 모든 강물을 고르 비춘다.' 임금 또한 그렇다는 것이었다. 임금의 은총이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미치기를 그는 꿈꾸고 또 꿈꾸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은 그런 의미에서 성리학의 핵심 가치인 이일분수(理一分殊), 하나의 원리가 세상 모든 사물에 고루 드러난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세종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학식과 이념을 갖춘 군주가 등장한 것은 꽤 반가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에게는 세종 같은 아량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임금은 고문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글이라면 모름지기 인의예지를 다뤄야하고 그 형식은 당과 송의 것이어야 했다.  (이하생략)

 

(35~36쪽.)

 이 책의 핵심은 김려와 이옥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그들의 우정이 감동적으로 훈훈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인『책만 보는 바보, 2005년』와 일맥상통한다. 그때의 감동을 이 책으로 다시금 느낀다. 그러고 보니 두 책의 공통점이 있다. 물론 조선 시대 문인 이야기(책이나 글/ 친구, 우정)라는 점도 있지만 둘 다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청소년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튼 모두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문학 책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줄거리는 이옥의 아들 우태가 김려를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간 잊고 지낸 죽은 벗 이옥의 글과 마주하며 그 시절을 생각해내는 과정을 좇다 보면 당시 시대상이 느껴져 절박한 이들의 심정에 공감한다. 그리고 공명은 점점 커져서 글이란 무엇인가, 우정을 나눌 친구 등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을 들어 찰찰 따르면 마음이 술병에 있고, 잔을 잡고서 넘칠까 조심하면 마음이 잔에 있고, 안주를 잡고서 목구멍에 넣으면 마음이 안주에 있고, 객에게 잔을 권하면서 나이를 고려하면 마음이 객에게 있다.  (중략) 몸을 근심하는 근심도, 처지를 근심하는 근심도, 닥친 상황을 근심하는 근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는 방도요,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107쪽, 이옥의 마음이 담긴 글.)


 할 일도 없고 외지기까지 하니(은비뫼 주: 여름날 외진 곳인 백운사에서.), 쓰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허허, 답이 되었나? 내가 글 쓰는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네. 지루해서 할 일이 없기에 쓴 것일 뿐.

 이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웠다. 글에 목숨 건다는 말보다 그냥 쓴다는 말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옥에게 글은 공기요, 물이요, 밥이없다. 그의 곁에 그냥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니까 이옥은 자기 삶 전체를 글쓰기의 현장으로 승화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

 

(114쪽, 이옥의 대답과 김려의 생각.)


  생각하는 창문, 이는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오른쪽 창문에 붙인 현판이다. 내가 북쪽에 있을 때는 어느 하루도 남쪽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남쪽으로 옮겨 오게 되자 또 어느 하루도 북쪽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게 되었다. 생각이란 이렇듯이 때를 따라 바뀌는 것이지만 그 괴로움은 전날보다 더욱 심하였다. 창문에다 생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때문이다. (중략) 나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여 느낌이 있으니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소리에 따라 운을 붙이니 곧 시가 되었다.

 

(140~141쪽, 김려의 마음이 담긴 글.)

  이옥은 소소한 것까지 관심을 두었다. 사람들이 중심만을 볼 때 그 바깥쪽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글로 표현했다. 그것도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래서 마치 그 현장에 있거나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며 언어유희처럼 문장을 이으며 부드러운 리듬도 표현했다. 그에 비해 김려의 글은 차분하다고 할까. 물론 부령에서 유배생활 중 기생 연희에 대한 글 등에서도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이들은 글을 버리고 살 수 없는 이들이었다. 지루해서 쓰고, 기분 좋아 쓰고, 유배지에서 절망하며 쓰고 그야말로 끝없이 쓴다. 이들의 글쓰기는 꾸밈이 없어서 좋다. 기교 없는 솔직한 글에서 마음이 느껴지고 당시 시대의 냄새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감동은 두 지기가 서로의 글을 아끼고 추린다는 점이다. 감동적인 부분이라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이들의 우정의 향기가 진한 여운으로 독자를 흔든다. 얼마 전 사라진 봄바람처럼. 아쉬운 봄 향기처럼 그러나 다음 해에 되돌아올 아련한 잠재적 그리움 되시겠다.

 

 김려의 유배길에서 느낀 서러움을 통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믿고 그에 따르는 이들의 더딘 걸음에서 지금의 나를 반추해본다. 좋은 책이었다. 읽는 동안 행복했으니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책만 보는 바보

청장 이덕무. 간서치라 불린 이덕무의 세계. 그리고 친구들(박제가 등.) 이야기. 책과 우정에 대한 감동.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에 대한 책을 내는 강명관. 조선의 책벌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이 책에서 수많은 길을 발견하게 될 행복함.

 

미쳐야 미친다


역시 조선지식인의 내면과 만날 수 있는 책. 조만간 다시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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