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당신의 연인은 독특한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불행히도, 그 책을 읽을 줄 모르고 품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 자신조차도 하나의 책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연인에게 읽힐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별한 자는, 파지가 몇 장 섞인 불안정한 책이거나, 시인 기형도가 말했듯이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책일 것이다. 이제 당신이라는 책을 다른 책의 힘으로 다시 편집하고 제본할 차례이다.  (13쪽, 프롤로그에서 부분발췌.)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는 <이별리뷰>의 부제이다. 책 그러니까 특히나 소설을 통해 위안을 얻고 깨닫고 고뇌하고 희망을 얻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 독자라면 그것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일인지 이미 알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글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책 테라피를 라디오에서 진행한 국어교육과 교수여서 그럴까. 32편의 작품을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기대보다 훨씬 와닿 았다.

 

 이별을 재음미하라는 말은 곧 이별의 시간을 돌아보라는 의미일 텐데 결국 이별이라는 것에 흠뻑 빠져보라는 이야기이다. 이별 없는 세상이란 없다. 그러나 그 이별의 의미가 특히나 사랑하는 남녀 관계에서 성립될 때 만드는 치명적인 생채기를 저자는 끄집어낸다. 치유하기 어려워 허우적거리거나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는 아픔 이상의 것. 이별 자체에 푹 담겨볼 것을…. 왜 그다지도 애써 이별이란 것을 지우려 나를 학대했을까 싶었다. 감수성이 예민해서 손해 보는 경우였다고 나름의 위안을 삼고 풋풋하던 시절의 짝사랑을 보냈던 젊은 날을 돌아보았다. 이별의식은 사랑을 꿈꾸고 바랐던 이들에게 절망보다 희망을 줄 것임을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별로 끝나지 않고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 후라서 그런지 수많은 작품 속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 저』와 두 희경씨들(은희경, 노희경)에게 더욱 공감한다. 이렇게 말하니 결혼에 완전 회의적인 거 같지만 사실 노희경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국, 결혼도 사랑의 연장선이니 같은 부류일 수 있겠지만, 확실히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은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드라마에서 배종옥이 보여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가 작품 속 인물들로 되살아나면 동시에 내면에서도 무언가가 출렁인다. 그것이 타인의 기억이나 행동을 빌어 나타난 또 다른 나의 일부이겠다. 별거 아니라 생각한 파편이 꽤 많이 들어 있는 셈이다.

 

 "결혼한 사람은 모두 불행을 견디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견디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불행이 아니라 권태야. 하지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상을 바꿀 의지없이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 권태의 장점이지." 은희경, 위의 책(205쪽.)

 

 나는 권태를 느끼지는 않지만, 결혼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감정 또한 권태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상을 바꿀 의지란 대단한 결단력을 요하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일지도 모르며 그러면서 상대를 이해한다고 긍정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저자의 후기에서 언급했듯 가면을 쓰지 않고 온 정성을 쏟자고 자신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부단히도 노력해야겠다.

 

 사람이란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이지 흥미진진하고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도 요약집 하나도 만들기 어려운 거 보면 말이다. 그동안 소설을 부러 읽지 않고 있었는데 다시 소설 속으로 깊게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별리뷰』를 책상 한편에 올려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