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책속으로 들어가기 전 <패싱 Passing>의 뜻을 생각하기도 전에 바로 아래 적힌 문구를 발견했다. 백인 행세하기! PASSING. 그렇다면 백인이 아닌 인종이 백인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띠지에 적힌 글로 얻은 정보는 할렘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작가 넬라 라슨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1929년에 발표한 작품이 국내에는 글빛 출판사를 통해 2006년에 소개된 것인데 아쉽게도 넬라 라슨은 당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남편과의 이별, 출판사와의 불화 등)으로 세 번째 소설을 출판하지 못하고 1930년대 말에 작가생활을 청산했다. 결국, 단 두 권의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니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2006년 지인의 서평을 통해서도 궁금했던 책을 이제야 펼치게 되었다. ㅡ 패싱을 선택한 사람들 두 흑인 여성의 대조되는 삶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아이린은 전적으로 패싱하지 않지만, 편의상 백인만 들어가는 호텔이나 영화 티켓을 끊을 때 등 잠깐씩 백인인 척 한다. 다시 말하자면 흑인과 백인의 구별이 모호한 외모이므로 다른 이들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녀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 정도이다. 책에서는 물라토라고 했던 거 같다. 혼혈이 되어 외모만으로 백인과 흑인을 구별할 수 없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이들을. 아이린과 다르게 패싱하는 클레어는 대담하게 백인과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딸의 외모도 다행히(클레어에게는 천만다행.)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다. 우연히 재회하게 된 이들의 장소는 의미심장하게도 백인만 들어갈 수 있는 호텔이었다. 그날의 만남으로 클레어는 아이린의 삶에 들어온다. 백인 속에서 그것도 흑인이라면 치를 떠는 남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클레어에게 아이린과의 만남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니 더욱 아이린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강박을 느끼며 불안과 만족으로 뒤범벅된 생활에서 같은 인종이 그리웠을 것이다. 애써 거짓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또한.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상대를 조정할 수 있는 클레어를 아이린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아이린이 거부해도 클레어는 이미 그녀 속으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무튼, 의도는 다르지만 아이린과 클레어 둘 다 백인행세를 한다는 점은 같다. 아이린의 가벼운 패싱과 클레어의 패싱은 차이를 보인다.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패싱을 택한 클레어를 보며 공존하는 탐욕과 공허함을 느껴진다.
" '패싱' 에 관해서는 정말 알 수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용서해요. 우리는 그것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찬미해요. 우리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며 그것을 피하면서도 보호해요." - 본문 101쪽. 아이린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