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ㅡ 책속으로 들어가기 전

 

<패싱 Passing>의 뜻을 생각하기도 전에 바로 아래 적힌 문구를 발견했다. 백인 행세하기! PASSING. 그렇다면 백인이 아닌 인종이 백인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띠지에 적힌 글로 얻은 정보는 할렘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작가 넬라 라슨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1929년에 발표한 작품이 국내에는 글빛 출판사를 통해 2006년에 소개된 것인데 아쉽게도 넬라 라슨은 당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남편과의 이별, 출판사와의 불화 등)으로 세 번째 소설을 출판하지 못하고 1930년대 말에 작가생활을 청산했다. 결국, 단 두 권의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니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2006년 지인의 서평을 통해서도 궁금했던 책을 이제야 펼치게 되었다.

 

 

ㅡ 패싱을 선택한 사람들

 

 두 흑인 여성의 대조되는 삶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아이린은 전적으로 패싱하지 않지만, 편의상 백인만 들어가는 호텔이나 영화 티켓을 끊을 때 등 잠깐씩 백인인 척 한다. 다시 말하자면 흑인과 백인의 구별이 모호한 외모이므로 다른 이들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녀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 정도이다. 책에서는 물라토라고 했던 거 같다. 혼혈이 되어 외모만으로 백인과 흑인을 구별할 수 없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이들을. 아이린과 다르게 패싱하는 클레어는 대담하게 백인과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딸의 외모도 다행히(클레어에게는 천만다행.)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다.  

 

 우연히 재회하게 된 이들의 장소는 의미심장하게도 백인만 들어갈 수 있는 호텔이었다. 그날의 만남으로 클레어는 아이린의 삶에 들어온다. 백인 속에서 그것도 흑인이라면 치를 떠는 남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클레어에게 아이린과의 만남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니 더욱 아이린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강박을 느끼며 불안과 만족으로 뒤범벅된 생활에서 같은 인종이 그리웠을 것이다. 애써 거짓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또한.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상대를 조정할 수 있는 클레어를 아이린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아이린이 거부해도 클레어는 이미 그녀 속으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무튼, 의도는 다르지만 아이린과 클레어 둘 다 백인행세를 한다는 점은 같다. 아이린의 가벼운 패싱과 클레어의 패싱은 차이를 보인다.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패싱을 택한 클레어를 보며 공존하는 탐욕과 공허함을 느껴진다.


" '패싱' 에 관해서는 정말 알 수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용서해요. 우리는 그것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찬미해요. 우리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며 그것을 피하면서도 보호해요."

 

- 본문 101쪽. 아이린의 말.

 

 

ㅡ 뿌리 깊은 인종차별

 

 패싱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종차별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는 갈래도 많고 다양하다. 백인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외모가 따로 있을 정도이니까. 낯빛이 다르다는 이유로 백인 이외의 인종은 지금도 차별을 받는다. 저자가 살았던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 간단한 예로 검다와 희다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들을 보자면 검은 것은 대게 부정적이고 나쁘게 치부한다. 검은 게 뭐 어쨌다고.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말이다. 유색인종이니 하는 말들도 결국은 피부색으로 나뉜 근본적인 분류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도 성리학 폐단으로 관습 지어진 남녀차별은 수면 아래로 숨겨진 부분이 제법 길다.

 

 다시 패싱으로 가서. 그렇다고 종족을 부정하면서까지 삶을 바꾸길 원했을까. 마지막 클레어의 선택은 그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선택이 충동적인 게 아니라 늘 마음 일부분을 차지한 어떤 하나의 그림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클레어의 선택은 능동적이었다고 믿는다.

 

 

ㅡ 두 여인의 섬세한 내면묘사

 

 저자가 여자여서일까. 아이린과 클레어의 내면묘사와 묘한 관계가 흥미롭다. 이것은 여성작가만이 쓸 수 있는 부분인데 권지예의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과도 비슷하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존재를 반기지 않지만 클레어를 밀쳐내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파경을 향해 치닫는다. 필사적으로 치키려는 무언가(가정)가 있는 아이린의 심경은 복잡했다. 그러나 두 여인은 어쩔 수 없는 같은 인종이었고 위에서 인용한 말에서 느껴지듯 그녀 자신도 클레어를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결국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클레어의 선택으로 아이린 또한 행복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ㅡ 끝나지 않는 패싱

 

 백인 행세하기라는 의미의 패싱을 크게 보며 현대의 우리는 어떤 행세를 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행세하기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대부분 자기 위안에서 그친다면 자의식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조건 따른다면 내 방식으로의 삶은 없다. 타인과 타인 사이에서는 이렇듯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문제가 사회나 종교, 민족 더 나아가 국가 등으로 거대해질수록 그 힘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낸다. 그런 거대세력과 개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는 그런 행세하기를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비행동적 폭력 아니 폭력적 관념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버리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거대한 무언가가 싫을 뿐이다. 그래서 다수를 절대적 승자로 만들어 소수를 억압하는 게 싫다. 끊임없는 모색이 필요하다. 그것도 절실하게. 어떤 수단을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옳지 않음을 알고 묵인하지 않아야 한다.

 

 

ㅡ 책장을 덮으며

 

 얇은 책에 든 넬라 라슨의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 힘은 넬라 라슨이 직접 체험한 데서 오는 절박함이 아닐까. 그녀의 시대를 온몸으로 힘겹게 살아내다 간 불운한 작가였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소설을 좋아하거나 반대로 읽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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