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았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는 새벽. 숨소리조차 크게만 느껴져서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운 날. 가족들이 자니 스탠드를 켜기도 미안한 날이다. 그러나 이렇게 누워서 날을 새기는 어렵다는 걸 아는 이상 가만있을 수가 없다. 결국, 조용한 방으로 가서 스탠드를 켜고 부담 없이 읽을만한 두께의 책 한 권을 펼쳤다. 그러다 <책상은 책상이다>의 여운에 빠져 잠을 청했다.

 

 7개의 이야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 모두 존재감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점인데 특히 책에서는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다. 어느 정도의 세월을 보낸 이들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이나 다가올 미래 따위는 없는듯하다. 현실에서 이들은 다만 외로울 뿐이다. 무언가를 해서 또한 무언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든가 모든 말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꿔서 부르기도 하며 발명에 집중했지만 이미 시대는 변하고 발명품이 넘쳐났으며 아무것도 더는 알고 싶지 않아서 집에 틀어박히던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까? 

 

 오히려 존재감의 위기를 넘어 존재감 상실이 되어버린다. 소외감은 또 다른 고립을 불러와 결국 세상과 더욱 높은 벽을 쌓았다. 그래서 이들은 행복하지 않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아있지 않았다는 점만 놓고 보자면 행동파 적이었던 이들이다. 또한, 행복해졌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결말을 우리가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작가는 재치있는 사람이다. 말을 다룰 줄 안다고 할까.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더 풍요해지는 문명의 혜택 속에서 정신적 빈곤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말이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앞으로도 다른 형태의 누군가로 살아갈 것이다. 이렇듯 어찌 보면 제법 간단한 우화 같은 이야기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작가가 시도한 방식이 마음에 든다.

 

 잠시 다른 이야기 하나, 아파트 1층인 우리 집에는 불청객 꼬마가 한 명 자주 온다. 가끔 오후 시간이면 뒷배란다 쪽에서 소리가 나는데 꼭 같은 꼬마 녀석이 돌로 두드리는 소리이다. 꼬마와 대면해서 왜 두드리느냐고 묻고 싶지만, 창을 열면 내빼기 바쁘다. 꼬마는 어쩌면 외로웠는지 모른다. 놀이터를 두고 여기까지 와서 혼자놀이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데 학교가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오고도 늦은 오후 시간이 남는가 보다. 집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꼬마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 그리고 유난히 오감이 예민한 나도 나만의 이유로 그 소음이 싫다.

 

 다음에 꼬마를 만나면 설득해보고 혹은 혼을 내보고 그래도 다시 온다면 그냥 둘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니 문득 녀석이 떠오른다. 돌로 두드리는 시간이 길지 않으면 좋겠다. 앞으로 두드려야 할 세계가 넓고 만만치않으니 말이다. 책상은 책상이고 돌은 돌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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