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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지금 내가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대게 다르기 십상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20대가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 이직하거나 통째 전환하고자 했던 마음의 갈등. 그런데 지금은 맹송맹송하니 이도 저도 아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불씨가 남아 타고 있다. 불씨를 지켜가는 거보다 더 어려운 일은 밟아서 깨끗하게 없애버리는 일이다. 누군가 나와 같다면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마흔이 조금 안 되어 나무먼지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평론, 기획, 출판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 두 개를 병행하기 어려워 결국 그가 선택한 일이 목수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미술의 흔적인 아름다움과 멋 부리지 않은 명쾌함, 성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목수 일을 하며 일기, 나무, 작업이야기 등을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지나치게 탐미적이지도 않고, 인체공학적이지도 않은 의자들이 탐이 날 정도였다. 이 책은 읽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책에 실린 사진과 스케치를 통해 저자의 글을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공학적 의자와 행동공학적 의자 이야기 등에 빙그레 웃음이 났다. 대략의 내용은 아래에 옮겨 적었다. 사실 임신 중에 매일 조금씩 들춰본 책을 다시 들여다보고 정리하자니 그때의 느낌이 모두 살아나진 않는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다시 펴보았다. 그러다 보니 다시 손에서 놓기 싫어진다. 저자의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재미 때문이다.
"푹신한 소파보다는 오히려 딱딱한 나무의자에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까닭은 딱딱한 불편함이 몸을 끊임없이 조금씩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그게 인간의 행동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중략) 게으름뱅이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인간이란 움직이는 동물이다. 게으름뱅이들이 오래도록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그 후로 나는 편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의 어느부분을 불편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99쪽, 게으름뱅이를 위한 텔레비전 시청용 두개골 받치대 편.)
여전히 매력적인 그의 의자들 그리고 위 세 번째 사진 [책의 바다에 빠져들다 / 단풍나무로 만듦.] 작품은 아직도 볼 때 마다 새롭다. 목수 김씨의 작품을 보며 연상되는 생각이 끝이 없다. 여기서 끝이라면 이 책은 단지 도판이 아름다운 책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작업을 하며 난관에 부딪히고 결국 해결한 후 얻은 간단한 진리가 매번 다르지 않은 걸 보며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무릎을 탁- 친다.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리는 망각의 동물이 인간이다. 게다가 책을 읽으며 타인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무료로 얻어낸 값진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도 목수 김씨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추운 겨울 어디선가 재료가 될만한 것을 구하느라 찬바람 속에서 땀을 흘릴지도 모르고 혹은 작업실에서 그간 모아둔 나무를 꺼내 부단히 작업 중일 수도 있다. 나무 톱밥 난로는 올겨울에도 사용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자니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이방에도 그의 나무 톱밥 냄새가 나는듯하다.
20대의 나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덧 30대를 지나고 있으니 40대에는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그때도 30대 때의 꿈을 보류하고 있을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 순간을 매진해야 할 것이다. 주저함은 지금의 시간도 깎아 먹지만 나중의 시간에도 영향을 끼친다. 느리지만 한 단계식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지켜가기로 마음먹는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목수 세계의 일을 저자를 통해 느낄 수 있어 감사한다. 나무는 좋지만 아무래도 나 같은 이는 목수는 못하겠다. 그러나 주변에 목수 한 명 알게 된다면 나무는 열심히 주워다 줄 거 같다.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목수의 손에 들려진 나무는 하나의 사물로 새롭게 태어나리라. 어리석음은 또 다른 어리석음을 낳을 수도 있지만(저자의 글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영월의 옛 소나무 부분.)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발전한다. 이처럼 따지고 보면 쓸모없는 시간이란 없다.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목수 김씨처럼 그저 묵묵하게 할 일을 하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