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사의 게임 1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단어를 들을 때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란 게 있다. 중세, 유럽, 고딕, 안개는 특히나 기묘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단어들로 한 번씩은 보았을법한 영화 이미지가 생각날 것이다. 필름이 돌아가듯 그렇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다소 무겁고 혼탁하지만, 몽환적인 기분까지 더해져 미스테리해지기도 한다. 한때 그 이미지에 반해 고딕적인 자료와 이미지를 찾기도 했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생각보다 많았으며 록의 장르 중 하나인 고딕메탈에도 심취했었다.
성인이 1년에 평균 소설 한 권을 읽는 스페인에서 출간 40일 만에 100만 부가 팔렸다는 책이 <천사의 게임>이다. 이른바 작가 사폰 현상이라고 불릴 만큼의 기록이며 미국에서도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 이를 때 없었다. 게다가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 스티븐 킹이 섞인듯하다는 말에 기대가 컸다. 모두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설이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흥미롭다. 주인공 마르틴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책을 좋아하지만, 아버지 몰래 책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을 혹독하게 치르는 등 행복은 책과 함께일 때만 맛볼 정도이다. 유일한 도피처이자 낙원인 서점주인의 따뜻한 배려로 그는 책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그러다 신문사에 취직하고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어 작가가 된다. 책, 서점, 신문사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것이다.
이제 거대한 미로에 갇힐 선택을 받은 마르틴의 운명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까지 든다. 어느 날 분위기가 묘한 신사가 편집자라며 그의 삶에 뛰어든다. 마르틴에게 책을 써달라며 거액을 주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사건으로 빨려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권은 흥미진진하다는 느낌보다 약간 지루함을 주지만 모든 이야기는 쓸데없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연계된 이야기 속에서 2권에서는 그야말로 흥미진진(1권을 참고 읽어준 보상을 해주듯.)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잡자마자 그 자리에서 읽어치웠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보며 스티븐 킹의 탁월한 이야기꾼적 기질을 보여주며, 스릴러적 요소와 기괴함이 드는 부분은 과연 에드거 앨런 포였고, 환상과 현실의 뒤죽박죽인듯한 몽환은 보르헤스적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책과 글로 이루어진 소설이지만 확실히 이미지적이라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1권에서는 작가 사폰의 대단함을 느끼기에는 과장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2권까지 읽고서야 사폰 현상의 특징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전작 <바람의 그림자>와 앞으로 나올 책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글자로만 그의 소설을 쫓으면 맥이 빠질 수도 있으니 꼭 상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언하건대 상상력이란 강력한 독자의 창조력이 바탕이 될 때 사폰의 책은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책을 비롯한 매력적인 소재들이 많다. 운명, 사랑, 종교에 철학적 요소를 더했다. 그래서 사폰의 책을 차례로 다시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 같다. 솔직히 이 책의 줄거리는 여러 요소에서 힌트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될 만큼 새로울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아도 그것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낼 능력이 모두에게 있는 게 아니듯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발견은 바르셀로나의 재발견이다. 물론 가보지 못해서 그곳을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만나는 독자라면 바르셀로나가 어떻게 그려질지 짐작이 간다. 어떤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을 수는 없겠지만(ㅡ다양성 때문에.) 안개에 쌓인 비밀의 도시라는 이미지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바르셀로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든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수세기를 통해 전해진 역사와 전설 등이 혼합된 도시 속 이야기는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끝도 없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에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현해낸 사폰의 이름을 잊지 못할 거 같다.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은 작가이름에 추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