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정채봉 지음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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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채봉 작가를 생각하면 먼저 <오세암>이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었는데 가슴 한쪽이 시리면서도 군불이 지펴지듯 훈훈함이 번졌던 기억이다. 매섭던 겨울이었지만 이제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의 아이는 더는 헐벗지 않으리란 생각에 안타까움은 결국 위안을 주었었다. 이 책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은 작가의 딸이 뽑아 만든 정채봉 선집이다. 그의 위안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불에 수없이 담금질을 당한 부지깽이조차도 봄이 오면 파란  잎을 틔우고 싶어 한다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에게 있어서랴. 힘내시기 바랍니다. (19쪽. 생명 일부.)

 
 힘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어보기가 오랜만이다. 남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자주 해주면서도 막상 나 자신에게는 몇 번이나 해주었던가. 잔잔히 마음에 힘을 실어주는 말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자꾸만 되뇌어 보았다. 이 한 줄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힘을 주는 말들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우화적인 글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우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즐거웠다. 물론 교훈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역시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 좋다. 
 

 뭐가 좀 없다고 풀죽지 마시오.
 현미경으로 본 당신은 엄청난 은하의 공동체라오. (27쪽.망원경과 현미경 일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라즈니쉬의 우화 <줄이기와 늘이기>를 다시 읽으며 전자의 작가들과 정채봉도 같은 선상에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이들의 지혜로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때로는 위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채봉 작가가 좋아한 이들처럼 당신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당신의 선은 무엇인가.
 상대의 선을 짧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크게 하였을 때만이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112-113쪽. 줄이기와 늘이기-라즈니쉬 우화에서 일부.)

 
 책에는 우화뿐 아니라 가족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는데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가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끈끈하다는 가족. 이 연결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겪으며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탓만 하는 이들도 있다. 정채봉 작가는 군에 있을 때까지도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면회 온 아버지조차 밀어낸다. 그러나 결국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살던 일본 집에도 가본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아버지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저자를 헹구어 주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나를 헹구어 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자지만 마음으로 느낄 이야기가 가득 들어차서 책장 넘어가는 시간이 더뎠다. 순수하면서 부드러우나 진정으로 강한 글이라 하겠다. 읽을수록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힘. 그것이 넘치는 책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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