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는 달큼(달콤이 아니다. 이병률식으로 표현.)한 잡지 냄새가 난다. 사진이 많은 잡지에서 나는 특유의 내음으로 신문의 그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페이지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다. 좋아하지 않는 냄새임에도 코를 킁킁대며 책 속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베니스에서 내 코를 잡아당기고, 어느 때는 모로코의 무두장이의 손에 잡히기도 한다. 너무 치열하게 사는 이의 손에 잡히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한다.     

 적당한 사진과 적당한 감성은 이제 너무도 흔하다. 그러나 분명히 이병률의 <끌림>은 달랐다. 시인이자 라디오 구성작가인 그의 언어는 꾸밈없이 솔직했다. 지나치게 감성에 빠지지도 않으며 회의적이거나 허무하지도 않았다. 그의 사진에 한 번 그리고 감성에 또 한 번 매료되었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만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담아둔 말을 잘 건져서 이야기하는 작가를 만나면 내심 부러우면서도 친근함마저 든다. 

 다음 생에 베니스에서 태어날 거라고 말하는 그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 안으로 쉼 없이 파고드는 이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여행지의 풍경뿐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오롯하게 넘쳐난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늘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서 그 꽃들을 따다 보면 어느새 품에 한 아름 가득해지니 행복할 수밖에. 아껴서 읽으려 했지만 어느새 다 읽고는 다시 펼쳐들고를 반복하다 보니 여행이 간절해진다. 

 낯선 곳에서의 날들을 가만가만 떠올려 보면 어디였건 분명히 사람 사는 곳이었다는 사실. 방식이 다르다 하여 원하는 것 또한 다르지는 않았다.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037 사막에 가자에서.)은 굳이 사막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그렇더라도 그곳에 가서 제대로 울어보자고. 1월에 만났던 시집 <여섯 개 안에 일곱 개, 젊은시인들>에서도 사막 이야기에 오래전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리고 2월에는 이병률마저 사막 이야기를 하는구나. 왜 사람들은 모두 사막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것은 내가 가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간접적으로 경험해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한다면 죽는 날까지 의문은 가시지 않겠지. 살수록 풀어지는 것도 많지만, 숙제가 많아만 지니 늘 제자리걸음이다.  

 어여쁜 저자 한 명을 더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작가의 다음 끌림이 기대된다. 그의 여행(끌림)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의 끌림도 끝나지 않으리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여행자 혹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또다시 떠나고 싶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안으로, 안으로 그렇게... 밀려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 #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티베트 속담. )   

 나는 항상 지도를 처음 받을 때처럼, 지도를 펴들고 버릇처럼 묻는다. 이 지도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냐고. 그건 여행자에게 있어 중요한 시작이며, 절대적 의무이기도 한 일이다. 지금 현재 있는 곳을 마음에 두는 일, 그것은 여행을 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 #044 이스탄불에서의 첫 아침의 일부. )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처 때문에 떠난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떠나 눈발이 된다. 사는 일 또한 그랬다. 차곡차곡 쌓인 사람과 희망에 대한 환상으로 살면서, 때론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까지도 바라보는 것.  

  끊임없이 뭔가가 닥치는 일이 인생이고, 그 닥치는 일을 잘 맞이하고, 헤치고 그러다 다시 처음인 듯 끌리고 하는 게 인생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 #000 도망가야지, 도망가야지 epilogue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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