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 안에 일곱 개 젊은 시인들 4
김혜영 지음 / 시와사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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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장의자는 일곱이 앉는 자리
 맞은편 하나에 지퍼가 열렸네
 초로의 사내 앞지퍼가 살짝 열려 있네
 어떻게 알려주나
 내가 앉은 쪽 일곱은 얼마나 알고 있나
 경우의 수를 오락가락하는 사이,
 할!
 여섯 개 안의 일곱 개가 벼락을 치네
 안다고 말하고
 모른다고 침묵하는 것인가
 안다고 알고
 모른다고 모르는 것인가
 지퍼 하나가 화두를 씹었네
 여섯 개 안에 일곱이 참 곱게도 들었네
 
 (김점용, '여섯 개 안의 일곱 개' 전문. 29쪽.) 

 

 젊은 시인들이 펴낸 시집을 읽으면 어느새 사라진 내 감성의 메마름이 서글퍼진다.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현실을 직시하고, 느낌을 재미있고 날카롭게 표현한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유쾌하기까지 하다. 갈라진 마음 틈에 물을 주듯 시들을 몇 번씩 곱씹는다. 위에 인용한 시도 읽을수록 고소해서 좋아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페이지에 기억에 남는 시를 표시해 두고 역시나 자주 뒤적였다. 시집은 얇지만 어쩌면 가장 두꺼운 책일지도…… 

  정치가 문제라고 물었으나, 멱살이 문제라고 깨물고 경제가 문제라고 묻자, 라면값이 문제라 깨무는 시(최동문, '[라고]의원의 악어(鰐魚)'중. 19-20쪽.)에서 깨닫다가 아닌 깨물다의 의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사과를 깨무는 것을 제외하고 의식을 깨무는 행위를 멈추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문했다.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와 시인이 서로 깨문다. 결국, 그곳에는 악어(惡語)의 피(시의 마지막 부분.)가 가득해진다. 딱딱해진 의식을 깨물다 보니 나 역시도 바닥에 넘치는 악어(惡語)피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래전 사막에 가서 숨 막혀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모래 속에 처박혀 뜨거운 한숨을 쉬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20대에는 이유없이 극한으로 치달아 몸을 혹사했는데 사막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모험이나 도전이기보다 그런 차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월간 GEO의 드넓은 모래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사막과 모래의 건조함이 남아있다.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 사막을 걷는 일은 쓸쓸하다. 무엇무엇에 대한 갈증과 무엇무엇에 대한 질투와 무엇무엇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무엇에 대한 망명 혹은 유배와 무엇무엇에 대한 소식과 무엇무엇에 대한 울음과 기대와 얼굴, 그리고 생각…… 생각과 쓸쓸하다. (유문호, '모래시계'중. 119쪽.)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다시 주어진 시간 앞에서 가끔 이유없이 파르르 떨기도 했다. 그것은 안도감이나 흥분일까, 혹은 반복일까.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날마다 하루가 짧다고 말하는 나는 영원을 꿈꾸지 않으면서 또한 영원을 꿈꾸었나 보다.  

 좋은 시란 지적인 말이나 언어유희보다 의식의 허를 찌르는 시가 아닐까. 요즘 나는 하도 많이 찔려서 넘치는 구질함 안에서 허우적거린다. 빨리 처치해버리고 발아래를 쳐다보고 싶다. 친구 같은 좋은 시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렇게 말하며 69명의 시인에게 모두 악수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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