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유전자
뤽 뷔르긴 지음, 류동수 옮김 / 도솔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지구의 역사만큼이나 살아온 생명체들이 있다. 인간도 그 중 하나로 진화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내왔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기 마련이지만 운 나쁘게도 멸종하는 수도 있었다. 요즘의 문젯거리 중 하나는 바로 그 원인제공을 인간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재해나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닌 위에서 군림해 온 인간 종에 의한 자연계 파괴현상은 더는 넘겨버릴수 없는 문젯거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리라. 

 과학분야는 실제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왔지만, 아직도 연구할 분야가 광범위하다. 그중 어느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전기장 처리를 통해 이미 멸종된 생물을 되살려 낸다는 기적같은 연구. 이들이 전기장 처리를 하여 살려낸 식물은 태고적의 외형뿐 아니라 성질까지도 그대로 살려냈다. 문제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이라 매도하거나, 인정은 하지만 연구가치를 사장시켜 버리는 것에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구의 적절한 활용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인류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릴 수 있다.  

 SF 영화들에서 전기장 처리의 효과를 어렴풋이 상상하고 설정했던 것일까 하는 재미있는 의구심이 들었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에서 미래전사가 나타나는 장면이라든가, 미스트에서 또 다른 차원의 통로를 열어서 태고의 공룡 등을 불러냈는데 그런 것들이 우연의 산물이라니 신기하리만치 이 연구와 닮아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이런 것인가 보다. 

 책 내용은 대충 두 박사가 전기장 효과에 대해 연구를 하지만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지금은 아들이 이어서 꾸준히 연구를 하며 아프리카 등 빈민국인 제3세계 식량조달을 위해 이 기술을 더욱 널리 알리려는 호소문까지 실려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럼에도 100% 신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좀 더 자세한 연구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점과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잠깐의 전기장 노출문제를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과학자에게는 정확한 수치와 연구결과도 중요하지만, 윤리의식 또한 그렇다는 걸 잠시 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래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픈 책이었다. 단, 전기장 효과에만 치중하지 말고 실제로 적용 가능하며 또한 그것을 과연 누가 제어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남아있으니 해결해야 할 숙제가 꽤 남은 셈이 된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연구거리를 재미있는 놀림거리라도 되는 양 언론과 방송에서 흥미 위주로만 반영하여 전기장 효과를 이용하고,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연구를 사장하는 행동을 보며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현실이 그랬다. 이 책은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장 효과가 실용화되면 비료, 살충제 분야에 타격을 크게 받는다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해도 시작도 전에 저지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만약 실용화 된다 해도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아직 갈길이 멀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종자전쟁은 진행 중이다. 결국, 대기업은 종잣값을 계속 받을 것이고, 농부들은 내야 할 것이다. 전기장 효과를 이용한다면 전통 종자보다 많은 수확은 보장되며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도 해가 없을 것이며, 해충보다 빠른 성장으로 약을 덜 뿌려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기장 효과로 되살려낸 종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성장이 빠르고 양도 훨씬 많다는 사실은 장점이면서 또한 단점이 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종이 인간에게 필요해서 되살려 냈으나 그로인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계란 작은 거 하나에서부터 어그러질 수 있다. 이를 무시한 대가로 우리의 자연계는 지금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은 겁이 난다. 게다가 제어라는 단어를 도통 모르는 듯 과포화 상태로 치닫는 현실에서 누가 이 프로젝트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추구를 떠나 국가의 이윤추구까지 걸린다면 필시 거대자본인 강대국이 가로챌 확률이 높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 이야기도 잠시 나오는데 그와 의기투합하여 제3세계 식량조달을 목적으로 노력한다는 이야기에 정말이지 그렇게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지인이 이 기술을 상업화할 수 있도록 이들은 돕겠지만, 누구는 방해할지도 모르니까. 모든 일에 그렇듯 확실한 해법이란 없다.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나가는 수밖에. 

 희망이 될 수 있는 빛 한줄기를 찾았지만, 그 빛이 언제까지 비칠지는 누구도 모른다. 또한, 그 빛이 인류를 관통하고, 자연계를 관통해 파괴할 빛인지 아닌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다소 회의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 기막힌 연구를 알게 되고 난 느낌은 솔직히 희망보다 우려가 앞선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물 위로 올라올 것이고 그 후에야 직접적으로 부딪혀 깨지거나 다시 사장될 테니까. 

 처음 책을 잡기 전에는 유전자 변이라고만 생각해서 생태계 파괴만 걱정했는데, 읽고 나서는 획기적인 발견이지만 아직 수많은 무리수를 갖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그래도 이대로 묻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한, 책에 좀 더 구체적인 연구내용이 실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려면 설득할만한 진정성이 필요하다는걸…. 더 고민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덮었다.  

 

 <태고의 유전자>를 읽으며 연상된 책들

-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책 후반부에 장 지글러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굶주리는 빈민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관심이 간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꼭 권하고 싶다.

- 다그니 케르너의 <장미의 부름>

: 이 책과는 다르지만 <장미의 부름>은 식물과 인간의 소통 그리고 식물을 이해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책. 연구대상이 아닌 이해할 대상의 식물이라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물론 신비성에만 몰두하지는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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