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팩션의 매력 속으로

 역사드라마의 인기처럼 책도 팩션이 많은 관심을 받은 지 오래다. 작가의 달콤한 상상력까지 가미


된 팩션은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도 단정하게 시

작은 이러하고 끝은 이러했다는 식의 이미 드러난 이야기도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

다. 하물며 무한한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울 수 밖에. 게다가 본격적인 정조시

대를 배경으로 일본에서의 간자(첩자, 스파이)활동을 하는 신가권(신윤복)이라니. 책을 손에 마주

한 순간부터 신이 났다.


빛을 받는 모든 시작의 순간

 저자 김재희의 책은 제목만 알지 실제로 접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많은 자긍심


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이 책의 뼈대가 된 인사동 고서점에서 만난 먼지 묻은 낡은 책. 그 책이 작

가와 만남으로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묻혀 있던 모든 것의 시작은 이렇다. 누구도 알지 못했

던 결과지만 여러 명에게 많은 호기심을 낳게 한다. 그림에 따로 관심이 있어서 김홍도와 신윤복과

만나건, 팩션을 좋아해서 이 책을 읽건 상관없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 도슈라이 샤라쿠와 신윤복

 일본의 유명화가 도슈라이 샤라쿠.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고 다만 그의 작품이 아직도 칭송


된다. 그의 판화는 유럽화가들에게도 깊은 감명과 신선함을 주었다. 고흐도 일본판화의 강렬한 색과

독특한 선을 좋아했듯 샤라쿠의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는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저자는 샤라쿠와

신윤복이 동일인물이라는 과정에서 진행한다. 정조의 간자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신윤복의 생활상이

주를 이루는데 게이샤, 요이란, 닌자, 당시의 서양인, 신문물 등을 엿볼 수 있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재미있고도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진행된

다니 미리 책을 읽는 것도 즐거움이리라.

 그러나 이 책은


샤라쿠와 신윤복의 관계도를 그리는 게 아니다. 소재로 삼아 진행될 뿐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오방색의 차례부터 책 속의 작품 감상까지 

 생각보다 두툼한 책이지만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은 책. 차례가 오방색(황, 청, 적, 백, 흑)으로 나


뉜 예쁜 편집에 김홍도, 신윤복, 샤라쿠의 작품도 함께할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특히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는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이다. 호랑이의 눈매 하며 털의 표현까지 자꾸만 눈이 갔다.

신윤복의 <미인도>하며 샤라쿠의 <3대 얏코에도베 역을 맡은 오타니 오노지노>의 강렬함까지 많은 작

품을 보여주지 않아도 대표적으로 글과 맞게 배치된 작품이 돋보인다. 한마디로 이들의 작품을 깊게

보길 원하는 독자에게는 관심을 실어주고, 새롭게 접한 독자에게도 충분한 매력이라 생각한다.


멋진 소재 그러나 핵심은?

 샤라쿠 = 신윤복?! 작가는 물론 같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샤라쿠


인 신윤복이기보다는 사유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 질척이는 느낌. 그래서 정조의 계획

과 잃어버린 교서의 행방은 이내 작게 축소된다. 책은 그야말로 재미있게 만든 조선시대 첩자이야

기물 같지만 무언가 아쉽다. 재미는 있지만 기대를 충족하진 못했다. 나는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를

원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신윤복의 예술혼을 더 깊게 느끼고 싶었다. 한 폭의 그림같은 당

시를 보여준 것은 좋았지만, 그의 내면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대의가 실현되진 않았지만 화가로 한층 성장한 신윤복의 모습은 좋았다.
 

■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글

 누가 없음을 머리로 삼고 삶을 등골로 알며
 죽음을 꽁무니로 여길 수 있을까.
 누가 죽음과 삶, 있음과 없어짐이
 하나임을 알 수 있을까. 그런 자와 벗을 삼고 싶구나.

 - 장자, 자사와 자여, 자려, 자래의 대화 중에서.


 제5부 흑색 시작부에 도입된 글인데 본문과 무관하게 한참을 펴들고 있던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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