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行 야간열차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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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숙 시인하면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혹은 고양이에 대한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녀가 말하는 고양이 이야기에 관심이 가지만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터라 그저 상상만 한다.
이 시집에도 고양이에 대한 시가 7편 있었던 거 같다. 고양이는 신비롭고 조금은 무심하지만
전혀 단조롭지 않다. 그래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시인도 그랬을까. 일상과 기억들을
되짚는데 그것이 조금은 평범하게도 느껴지는 시들도 있었다. 그래도 문득 잠시라도 생각이
나고는 하는 시들이라 2월부터 지금까지 손에 가끔 들었다. 부모님 또래의 시인이지만 명랑함
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부풀어 올라 탱탱해졌다.'(31쪽, 파두-리스본行 야간열차 中.)는 그런
느낌. 그래서 그 탱탱함을 잘 유지하기를 바란다. 어느 순간 바람이 빠져 시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명의 소설도 기억이 나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온 날
하얀 벽지로 꾸민 팽팽한 방
천장도 벽도 그늘 한 점 없이 환했다
한 달이 지나 한쪽 벽
천장에서 방바닥까지
길게 금 하나 생겼지
또 한 달이 지나니
창틀 모서리에서 금 하나 또 기어나와
신발장 뒤로 숨어들었다
벌어진 틈으로 시멘트가
바씩 마른 맨살을 드러냈다
뭐, 이쯤이야

날이면 날마다 벽과 천장이
울록볼록 울퉁불퉁
벽지 안쪽 사정을 조잘조잘 실토하고
그래도 뭐, 나는 태평했는데
온종일 비 쏟아진 뒤
천장에 갈색 점 하나
멍처럼 번진다
둘, 셋, 넷, 다섯
수심처럼 번진다

벽지 너머에서
커다란 비밀이 발꿈치를 들고
찢은 발을 딛고 있는 듯
다섯 개의 둥그스름한 얼룩이여

조마조마 지켜보는데
그대로 뚝 멈춰 있다
뭐, 뭐, 저쯤이야

비가 전혀 새지 않는 집은 살아 있는 집은
살아 있는 집이라 할 수 없다네. *

  
* 건축가 조건영 선생의 말씀.

:: 옮긴 시는 위 시집의 90-91쪽 <집 1> 전문.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음으로
여름이 가버린 걸 알 수 있듯
아, 그렇게
죽음이 시체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도 속에서 질겨지는 시체들을.
 
(46쪽, 가을날 中.)
 

 

죽고 싶도록 슬프다는 친구여
죽을 것같이 슬퍼하는 친구여
지금 해줄 얘기는 이뿐이다
내가 켜 든 이 옹색한 전지 불빛에
生은, 명로해지는 대신
윤기를 잃을까 또 두렵다.
 

(58쪽,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 中.)
 

▲ 그밖에 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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