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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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건재한 노장 박완서.
작가의 <친절한 복희씨>는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농익어가는 글투가 정겹
다. 노년ㅡ젊게는 중년ㅡ의 이야기들인데 한 작품을 제외하면 다 여자주인공이다. 이 구수함과 따뜻함
은 역시 박완서의 매력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 현재를 꿰뚫어 버리는 통찰력이 있다.
그래서 작품이 빛을 발한다. 단지,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
그 적랄함이 풍겨서 좋은 것이다. 수다수럽게만 들리지 않아 귀를 막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박완서표
문학이다.

기억에 남는 첫 작품은 역시 1_그리움을 위하여. 수다스러울 만큼 잘 그려낸 이야기를 통해 그리움에
대해 되돌아 보게 한다. 이 순간 내가 그리운 것은 무엇인가. 과연 그 그리움의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
까.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워할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작가의 말처럼 축복이라
는 사실이다. 갈라진 마음을 촉촉하게 해줄 그리움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40쪽, 그리움을 위하여 中)



책으로 출간된 <그 남자네 집>, <나목>이 겹치는 2_그 남자네 집.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나목>은
박완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남자네 집> 또
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작품만 두고 보자면 사실 개인적으로 <나목>을 더 좋아한다.

3_마흔아홉 살.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나
는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그렇게 될까. 괜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 불필요한 노력을 하고 살지는 않는
지. 그런 관계에 아직도 구속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위선도 용기도 둘 다 자신이 없었다.

(108쪽, 마흔아홉 살 中)



따뜻하고 구수한 또 하나의 이야기였던 4_후남아, 밥 먹어라. 어떤 설명보다도 아래의 인용구를….


녹물은 안 들었는지 몰라도 밥 뜸 드는 냄새에는 무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연기가 벽의 균열을 통과하면서 묻혀 온 흙냄새도, 그 모든 냄새와 어우러진 밥
뜸 드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

(140-141쪽, 후남아, 밥 먹어라 中)



5_거저나 마찬가지. 제목을 정말이지 잘 들어맞게 지었다.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반영한 이 단편에서
거저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어 보았다. 6_촛불 밝힌 식탁도 역시 현실 이야기의 반영이며
7_대범한 밥상에서 일반적인 가족관계와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형성한 이들의 모습과 역시 남
의 이야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동명인 8_친절한 복희씨는 박태원의 <천변풍경>이 절로 떠올랐다. 버스차장을 꿈
꾸고 올라온 촌녀가 부유한 상인과 억지혼인을 하고 사는 이야기. 그녀가 고이 갖고 있던 환을 강물에
버리고 웃음 짓는 모습에서 그것은 환멸일까 싶었다. 마지막 단편인 9_그래도 해피 엔드. 시골로 낙향
하고 얼마 안 되어 서울모임에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 결국, 해피 엔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풍속도가 느껴지는 단편들이었다. 소시민들이 갖는 삶의 애환 그리고 가족에 대해
맛깔나게 그려낸 작가에게 감사한다. 다들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는다. 표지그림
이 김점선의 작품이다. 그 활기찬 모습처럼 꿋꿋하게 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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