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창비시선 200
신경림 엮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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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詩/ 최승호의 북어(北魚),「대설주의보, 민음사(1983)」

신경림이 엮어낸 창비시선 200 기념 시선집. 많은 시인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책.
한 권의 시집에서 다양한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다양한 맛의 초콜릿이 담긴 상자에서
한 개씩 맛보는 즐거움과 같다. 추억의 시, 마음의 시, 처음 접하는 시와 만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하나 뒷부분의 엮은이 신경림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고민해 보았다.
詩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시집을 사서 읽지 않는다는 사실, 하물며 도서관에 가도 시집은 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 소설의 전작주의자는 있어도 한 시인의 전작주의자는 드물다는 것은 이 시대의 우울함
이다. 나도 시집이 일반 소설 등에 비해 권 수가 적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 소설보다 시집이 시간이 지
나도 몇 번이고 손에 드는 책임을 고려할 때 시집을 더 읽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 책읽기
목표는 <우리詩 읽기>이며 그 첫 시작이 바로 이 시집이다.

시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들 세계를 엿보며 상상과 조합을 반복하며 감응하는 시
간이 좋다. 위의 시 <북어/최승호>도 참 좋아한다. 시인의 성찰은 곧 나를 돌아보게 하며 나 또한 묻는
다.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내 귀까지 먹먹하게 만드는 하나의 시.

시인들이 가슴으로 쓰는 시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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