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작가가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섬세한 심리묘사를 하
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 나머지 이유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여주인공인 조제의
이름이 바로 이 소설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강 자신의 이름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선택한 이름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제법 많은 아홉 명의 등장인물 그리고 이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와 심리묘사는 시종일관 두드러진다.
이들은 모두 미쳐버릴 만큼 가슴이 너절하게 찢어졌다. 사랑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서. 다양한 등장인
물들을 통해 또한 다양한 사랑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 중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 자는 몇이
나 있었을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충동적이며, 맹목적이며 허무하기까지 한 모습에서 사랑의 달콤
함보다 상처가 더 빨리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모두가 외롭다는 사실도 처연하게 와 닿
는다.

 제목처럼 언젠가는 식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열정은 너무도 쉽게 끓어올랐다. 그래서 그 대상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육체적인 욕망이건, 젊음의 한 단면이건 혹은 안락
한 삶의 한 부분이건 간에 그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다. 다만, 휘청거리며 흔들릴 뿐이다.


젊음이 맹목에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랑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랑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 (84쪽. 에두아르.)



 지나간 열병 같던 사랑 하나가 떠올랐다. 이제는 그것을 젊을 때의 순수한 첫사랑 내지 짝사랑이라 부
를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그 무엇도 인정할 수 없었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젊음이란 무수한 상처
들의 훈장 같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이 말도되지 않는 무의미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돌아보게 되었다.


열정이란 삶의 소금이며, 열정의 지배 아래에서 사람은 소금없이 살 수 없다는 것ㅡ열정이 존재하지 않
을 때는 너무나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ㅡ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13쪽. 알랭.)



 베르나르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고자 찾아간 조제. 그녀가 그날 밤 혼자 깨어 벽지의 꽃무늬
를 비추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는 장면이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장면
이 되살아나 공간을 채운다. 영화의 조제 또한 홀로 깨어 방에서 바라본 조명불빛과 영상이 생생하다.
이들 조제의 느낌이 하나로 만나는 접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 조제는 무척이나 담담
하다. 그래서 여운이 남는다.

 프랑스 파리의 연인들. 그리고 이들의 흘러가는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달 후, 일 년 후에도...
사회의 통념으로 이들을 보자면 이해할 수 없고 결론 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랑의 정의 내지는
연애서가 아니다. 인간의 외로움과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의 슬픈 몸짓으로 가득하니까. 그러면서도 포
기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의 끝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는 들지 않는 이유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동시
에 쓸쓸하다는 말의 의미를 사강은 알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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