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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 번째 만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으로 작가가 결혼한지 2, 3년 때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래서 빠질 수 없는 남편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결혼에
대한 담담함을 말하기에 달콤한 환상이 깃든 결혼서가 아니라는 것이 특징이다. 신혼기나 결혼생활을
몇 년 공유한 부부가 읽으면 많은 공감을 할 거 같다. 그러나 미혼인 내가 읽어도 왠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특별함은 그녀의 코드가 아니었다. 언/제/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풀어가는 형식과
글투가 돋보이는 작가니까.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작가를 대표하는 특별함임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
다. 그래서 오래도록 다른 생활을 하던 두 사람이 만나 한집에서 사는 이야기는 낭만보다 현실이라는
생활에 속하는 영역임을 보여준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크다. 연애할 때는 아직은 생활의 한 부분일지 모르나, 결혼은 생활 그 자체이
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매일 마주치는 이들은 감정을 교류하고, 생채기를 내고, 자기 안으로 쏙 들어가
기도 하며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는 여러 과정을 숨 쉬듯 빈번하게 겪는다.
행복, 불행, 결혼생활의 장/단점, 생활의 유지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함, 외로움 그리고 담담함. 그녀의 이런 담담함은 나와 닮았다. 다만, 조금은 차가운 부분인데도 그
녀 쪽이 더 따뜻하다고나 할까. 불현듯 언젠가 읽은 노희경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으로 책임질 올가미를 만들려하지도 않았다는 반성.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고 외쳤
던 글이었다. 두 작가의 말은 결국 하나였다.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재지 않는다는 방식.
나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란 말로 맹세한 사랑이나 생활은 어디까지나 결과라고 생각
한다. 적어도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132쪽. RELISH 中)
알고 있다. 이런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나 또한 가끔은 그녀처럼 마음에
담아 둔 이런 생각을 내뱉을 때가 있다. 그것은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진실한 내 마음의 표현이라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미래의 어느 시점
에서도 너만을, 혹은 그 어떤 것을 사랑하거나 하고 있을 거라고 못박기 싫다. 지금이 미래가 되기에 나
또한 지금을 살고자 노력할 뿐이다.
책을 읽으며 여전히 몽롱한 그녀의 글투에서 작가의 시린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따뜻해졌다.
가볍게 읽은 에세이지만 나와 닮은 부분이 반가웠다. 결혼 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그때 가면 알 일이다.
작가가 묻는 주말은 충분한 주말의 즐거움과 따뜻함을 아는 이에게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그처럼 결혼
의 담백함을 아는 혹은 알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