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은 잘 못 마셔도, 물은 적게 마셔도, 차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하루 물 마시 는 양보다 차를 마시는 양이 더 많을 지경이며 술도 따뜻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것이 없나 찾는다. 왜 이토록 차에 열광하게 되었나 모르겠지만 체질적으로 자극적인 맛을 거부하기 때문인 거 같다. 부모님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아신다. 때가 되면 매실, 오디, 유자 등을 꿀이나 설탕을 이용 해서 재우시는데 단맛이 싫어서 애써 타주셔도 별로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자연 음료나 술은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오직 차 종류만이 내게 사랑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직접 만들고 싶었다. 집 앞에 아버지께서 심어 둔 산국이 피는 가을이면 그 소담한 모습과 향에 취했던 기억이 나서 전화를 걸어 물어볼 정도다. 산국으로 예쁜 꽃차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그 방 법을 알려주었다. 책을 잡자마자 맨 먼저 넘겨 본 페이지도 감국과 산국 페이지였으니까. 평소 관심이 있던 차 종류부터 아까시꽃, 호박꽃, 해바라기꽃, 무궁화꽃, 달맞이꽃도 차로 만들 수 있다 는 사실도 배웠다. 자연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애써 태연하려해도 신기할 뿐이다. 봄에 흐드러지는 매 화를 보며 그 꽃잎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면 안타깝더니 차로 만들어 두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른 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정이었다. 꽃잎이나 잎을 채취하고자 보내는 시간과 정성은 물만 끓여내어 마시 던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철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있으니 그때를 놓치면 한 해를 꼬박 채워 기다려 야 다시 만날 수 있으며 기껏 만들었다가도 보관을 잘못하여 그대로 버릴 수도 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야 오롯하게 직접 만든 야생초차 한 잔과 마주할 수 있다. 그러니 차 한 잔을 만드는 과정에도 삶 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수밖에. 무엇이든 대충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급해서도 안 되 며 인내하고 자꾸만 손길을 주어야만 한다. 인생 또한 피고 짐의 연속이므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친절한 설명도 한몫하지만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자연을 대하는 마 음 또 거기서 얻은 차 재료를 차로 만드는 과정은 귀찮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행복이다. 자연이 조건 없이 그에게 내어 준 꽃이나 잎으로 만든 차는 또한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눈다. 이런 것이 참된 행복이 아닐까. 차 한 잔으로 마음이 데워지는 순간이다. 만든 마음이 이러한데 마시는 마음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차를 직접 만들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은 후에 차차 접하더라도 그 마음씀씀이가 예뻐서 참으로 쓰 다듬어 주고 싶은 책이다. 자연이 좋다고 하는 이들은 많지만 자연과 닮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시 한 번 자연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한다. 낮에 탱자나무에서 본 파란 벌레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거친 가시밭길을 온몸으로 기어나가 면서도 벌레는 제가 지나온 길을 결코 탓하지 않았다. (83쪽. 탱자꽃차에서.)